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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2월 22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놋뱀의 표적(거듭나게 하는 표적)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 3:1~21 -
성경 본문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놋뱀의 표적(거듭나게 하는 표적) 요3:1~21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생명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물은 저절로 포도주가 될 수 없다. 누구로 인하여 무엇인가가 들어와야 포도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고 밖으로부터, 즉 영원하신 이로부터 생명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따라 돌 항아리의 물은 포도주로 변했고 돌로 된 성전은 인격으로 된 성전이 되었다. 요한은 이 원칙을 따라서 되어진 몇몇 사례들을 듦으로서 말씀이 육체가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려 한다.
니고데모가 찾아옴
니고데모란 사람은 대단히 고귀한 사람이다. 우선 부자였으며(19:39참),바리새인이고, 산헤드린 회원이며, 저명한 유대가문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고, 도덕적이고, 신중하며, 겸손한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30세 정도밖에 안 되는 청년 예수를 찾아온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태도는 대단히 겸손했다. 보잘 것 없는 한 청년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는 존칭으로 대하고, 하시는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다 내려놓고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밤에 예수를 찾아온 것이다.
니고데모는 분명히 더 나은 어떤 것을 알고 싶었을 것이며, 더 나은 어떤 삶을 위해서 자문을 얻으려고 찾아 왔을 것이다. 존귀한 사람은 더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런 마음을 아시고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자기를 찾아 온 사람도 있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목적하는 바가 자신이 가는 길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결정적인 자리에서는 다 떠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에게 증거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2:23~25).
세상에서는 훌륭하나 하나님 나라와는 무관함
니고데모는 참으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대단히 훌륭한 것들로서 세상에서는 꼭 필요하고 귀한 것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잠수에 필요한 장비는 등산에는 무용하다. 세계가 다르면 필요도 다르다. 문제는 길이 다르다는 것이다.
길이 다름
아담은 길을 달리했다. 생명나무와 지식나무는 노선을 좌우한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의 공급과 제한 안에서 새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이며, 지식나무는 사탄과 연결되어 바벨론을 향한 길이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길에서 매우 충실한 사람이며 월등한 사람이지만 생명의 길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거듭나야 함
거듭남-아노돈(anothon)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근본적으로' 라는 뜻으로 쓰이고, 다시, '두 번째', '위로부터', 등으로 쓰이는 말이다. 요한은 이 말을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영생'이라는 개념과 상호 연관시켜 사용하고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하심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한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예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심으로써 영(프뉴마)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거듭남이란 물과 성령으로 난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다시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물은 무엇인가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회개(침례)를 통하여 영으로 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벧전1:23,약1:18참)을 통하여 영으로 난다'는 것이다. 또 물은 생명이라 할 수도 있다. 하여간에 거듭남은 땅에서 일어나지만 하늘에 속한 것이다.
성령은 바람과 같다. 운동은 있지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령으로 난 사람에게는 다시 태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상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핑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듭남은 근원적인 문제임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에 거듭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더라면 아담은 지음 받은 사람에서 거듭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다시 나도록 정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지음 받은 생명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나야 한다.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계가 다르고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포도를 가지고 술을 만들지만 단계와 용도가 서로 다르다. 포도 상태를 첫 번째 출생이라고 한다면, 포도주는 두 번째 출생인 셈이다. 인생도 그렇다는 것이다.
거듭남은 성령의 일임
니고데모는 대단히 존경스러운 사람이었으나 이 일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결과를 보고 믿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어떻게 천지를 창조했는지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이스라엘이 에굽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가? ....... 하나님 하신 일은 그 과정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를 보고 믿는 것이다. 태풍이 어떻게 집과 자동차를 엎어버렸는지 알 수 있는가? 땅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하늘의 일을 알 수 있겠느냐 하셨다.
인자가 들림으로 사람이 거듭남
주님은 최후로 한 표적을 제시하셨다.“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호르산에서 진행하다가 길이 험하다고 모세를 원망하자 여호와께서는 불 뱀을 보내서 물리면 죽게 하셨다. 이때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자 구리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라 하시고 처다 보면 산다고 하셨다. 쳐다본 자는 다 살아났다는 것이다(민21:4~9참).
구리로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둔 뱀을 쳐다 보았는데 어떻게 불뱀의 독이 치료 되었던 것인가? 이것은 십자가에 달림으로 인류의 죄의 독을 소멸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표적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아담에게 하나님같이 된다 했던 마귀가 심판을 받고나면 그를 믿고 따랐던 “나”는 허물어진다.(히2:14참) 마귀를 멸망시키고 나를 원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이때 예수가 “나”를 위해서 죽임 당하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고, 그가 다시 살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신 것을 믿으면 새 생명을 받는다. 예수님은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고 죄의 독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장대에 달리시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셨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철저하게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 믿는 사람은 다시 난다는 것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 흔적은 확실하게 남는 것처럼 믿는 사람은 다시 나게 된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 사단으로 말미암아 발생했던 모든 문제는 일괄 해결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영생은 절대적으로 믿음의 문제다.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다. 구원의 빛이 왔다.
어떻게 거듭나는가? 나를 대신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이가 있다. 그의 죽으심을 나를 위한 죽으심으로 믿으면 그와 함께 죽고, 그의 살아나심을 나를 위한 살아나심으로 믿으면 그와 함께 산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사는 것이다.
맹물은 예수로 말미암아 표도주가 되었고 돌로 된 성전은 인격으로 된 성전이 되었으며 일차적 출생의 인간은 거듭난 사람(이차적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