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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새 생명 가운데서 행함(3)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롬7:1-8:4 -
성경 본문
롬7장
1.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줄 알지 못하느냐
2.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8장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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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로마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복음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함
2. 생명의 영의 법으로 삶(1)(롬7:1~8:4)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절망적 상태 아래 있는 인류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구속하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쓰임이 될 수 있는 인간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인간의 절망적 상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어짐으로써 하나님을 표현하여 그를 영화롭게 하여야 할 위치에서 이탈하여 금수와 버러지 형상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표현체로서 그의 형상이 되지 못하면 즉시 금수와 버러지 형상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이루신 일들을 로마서에서 인간적인 경험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1장에서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2,3장에서는 불의함으로 절망적 상태 아래 있는 인간을 말하며, 4장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을, 5장에서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심을, 6장에서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7장에서 갈등과 고뇌에 빠진 인간의 상태를 나열하고 탄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2,3장의 절망과 다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데서 드러난 문제인 것이다.
1절에서 6절까지는 율법 아래 매여 있는 인간의 위치와 그 해결을 아내와 남편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옛 남편인 율법에 대하여는 그 율법에 대하여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새 남편과 결혼함으로써 율법에서 벗어나 영의 새로움으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7절 이하에서 말하는 것은 자신은 영의 새로움으로 섬기려 하지만 자신의 지체 속에 내재하는 한 법이 있어서 마음의 생각과 늘 대치되고 결국에는 그 법이 자기가 원하는 길과 다른 길, 즉 죄의 길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옛 남편인 율법 아래 있었을 때는 율법을 따르지 못함으로 늘 정죄와 심판을 받고 사망에 빠져 갔다면, 이제 새 남편을 따르면서는 그 정죄로부터는 해방 되었으나 자기 속에 있는 한 법이 영의 새로움으로 섬기는 것을 방해함으로 인해 번번이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고통의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율법 아래 있었을 때에는 율법이 나의 욕망을 억제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면 이제는 지체 속에 있는 한 법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나를 방해함으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밖에는 율법이 있어서 내 욕망을 따르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고, 안에는 지체의 법이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7:24)고 탄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7:25)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는 것이다(8:1).
옛 남편 아래 있던 가련한 여자는 새 남편을 만나서 신분의 변화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새 남편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니까 육체 안에 살아 있는 죄와 사망의 법이 방해를 할뿐 아니라 더욱이 그 법 아래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많은 선량한 믿는 이들이 이 과정에서 고민하고 갈등을 느끼다가 좌절하거나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다. 좌절하면 이생에서의 성취를 포기하고 내세를 사모하거나 아주 믿음을 떠나는 경우가 있고, 다른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방법으로 돌아서 가인과 아벨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가인과 아벨은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과 종교적인 거래를 하려고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선악과의 독이 나타나서 형이 아우를 죽였던 것이다. 인간의 종교 역사는 이 일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벗어나보려고 그 길을 택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하고, 혹은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눌려 있던 악이 다시 일어날까?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을 때 옛 남편에 대한 의무는 없어졌으나 지체 속에 있는 본성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선을 행하려고 할 때 그 본성이 일어난 것이다. 옛 남편에 대한 의무는 새 남편의 죽음을 통하여 소멸 되었으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본성은 처리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선을 행하려 할 때 그 본성이 나타난 것이다. 해방은 은혜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확고하지만 선을 행하는 것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본성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혼란에 빠지고 좌절하게 된다. 선을 행하려 하는데 왜 안 되는가? 하나님을 위하려 하는데 왜 안 되는가? 그래서 열심과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느끼고 더욱 열심과 정성을 다해도 그럴수록 더욱 안 되는 것이다. 일들은 곁길로 빠지고 마음에는 안식이 없다. 성공이라고 하는데 공허하고, 주변에는 평화가 없는 것이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다 해도 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을 위한다 해도 나를 위하고 마는 것이다. 남을 위한다는 것이 남을 해하게 되고 조용하게 한다는 것이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성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렇다! 선을 행하려 할 때 인간성, 즉 인간의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악을 행할 때 외면이 드러나고, 선을 행할 때 내면이 드러난다.
로마서 7장의 문제는 선을 행하려 할 때 드러나는 내면의 문제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외면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외면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산상수훈에서 내면의 요구를 제시하신 것이다(마5:1~참).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자!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따를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는데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8:3,4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