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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하나님의 선택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롬9:1~11:36 -
성경 본문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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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로마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복음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함
1. 하나님의 선택(9:1~11:36)
1). 운명을 바꿈
성경은 계시의 말씀이다. 창조는 “빛이 있으라.”는 말씀으로 시작 된다. 이 빛은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일을 계시하시는 말씀이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창조자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 빛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요한은 이 빛이 세상에 왔다고 했다(요1:9). 이 빛은 우리의 운명을 자연인에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으로 바꾼다.
이 빛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하신 일을 열어보여 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셨으며 이스라엘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우연히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일은 시작하시고 목적에 따라서 성취하신다. 물을 가르시고, 궁창이 있게 하시고, 뭍이 들어나게 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심에서 최종 목적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정밀하게 선택된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서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하였으므로 그 중에서 어떤 소수의 사람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선택하신 것이다. 셋은 아담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기 위하여, 노아는 네피림의 멸망에서 인류를 보존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은 약속의 후손(이삭)을 주시기 위하여 각각 선택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이 사실과 함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육신의 자녀(자연 세계의)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다(9:8).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약속이 있다. 아들의 자격, 하나님의 영광, 언약이 있는 율법, 하나님을 섬김, 그리고 그리스도까지, 이 모든 것들은 약속의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이라는 것이다.
이 선택은 법리적인 자연세계에 속한 것도 아니고 인간의 행위에 따른 것도 아니다. 자연은 법리대로 돌아간다. 선택이란 없다. 그리고 인간세계는 선악과의 원칙에 따라 자기가 행한 대로 얻는다. 상선벌악이며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선택의 세계는 다르다. 리브가가 잉태하였을 때에 아이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였고(9:12). 또 아브라함에게 맏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으나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후손)라 할 것이다”하셨다(히11:18,갈3:29,창21:12인). 하나님의 선택이 새로운 운명이 된 것이다.
자연의 법은 기계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지으신 이의 주권으로서 택함 받은 자들에게 지극히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그의 모양대로 지으셨다는 것, 새로운 인류를 위한 씨로서 이삭을 택했다는 것, 영광의 통치를 위해 야곱을 택했다는 것,.....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죄인들을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생각만 해도 이 얼마나 벅찬 축복인가!
2). 하나님의 주권으로
무슨 조건으로 이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인가? 하나님의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 있다고 해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선택은 선택한 자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 “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9:15,16)라 하셨고,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부르리라”(호2:23)하셨다.
토기장이가 어떤 그릇을 만들든지 그것은 토기장이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 선택은 일방적 주권이다. 또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야 한다. 만일 나에게 “내가 너를 내 형상을 따라 내 모양대로 만들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분명히 “싫습니다. 나는 남의 형상대로 빚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라고 거절할 것이다.
또한 토기장이가 먼저 진흙들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아무 그릇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가서 구워지기를 원하는 진흙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나의 생각과 다르지만 완전하다.
선택은 선택한 자의 주권에 속한 것이므로 그 선택한 자의 어떠함이 그 목적과 내용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완전한 축복인 것이다. 인간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서 그분의 모양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어떠한 영광의 축복인가!
동물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운명으로 바뀐 것이다. 누가 자기 힘으로 타고난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는 자연법칙 안에 우리는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으로 이것을 바꿔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연의 법칙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또 다른 의도로 인간을 선택하셨는가? 하나님의 창조에는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일차적 창조 만으로서는 온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간을 선택하여 창조하신 것이다.
일차적인 창조에 속한 것들은 기계적이기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다. 영이신 하나님, 변화하는 하나님,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선택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는 아무리 잘 만들어져 있어도 주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주인의 뜻대로 운전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언제나 그와 함께 할 자로 선택 창조 되었다. 할렐루야!
3). 믿음이 필요함(9:30~10: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받은 백성이다. 그런데 이것을 알면서도 자기 의를 세우려고 율법을 내세우고 자랑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에는 오직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자기 의는 선이나 악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선이나 악과 상관없이 자신의 목적을 두고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형상으로서 그를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은 악하고 하나님은 선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기준으로 나름 겸손(?)하게 하나님을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선악을 기준으로 창조자를 정의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선하다 해도 악이고, 악하다 해도 악이다. 그 기준으로는 하나님의 창조도 선택도 시인할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진실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태내실 형상으로 선택하여 지어 주셨다는 것을 감사하고 믿어야 한다. 이것을 믿는 것이 의요, 선이다. 하나님은 행위를 보지 않고 믿음을 보신다. 주의 말씀이 나타났을 때, 그 아들이 나타났을 때, 즉 그가 형상으로 나타났을 때,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 무엇에도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을 받은 자가 이것을 믿지 않으면 선택의 경륜에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에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다. 오직 믿음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