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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변화됨(2)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롬12:2 -
성경 본문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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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로마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복음
로마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복음
변화(12:2)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우리들의 합당한 봉사라고 하였다(1). 성막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위한 하나의 건축물이다. 그런데 그 실제는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들의 봉사로 나타난다.
제사장들의 봉사는 제물을 드리는 일이지만 다른 면으로는 제물 자체로서 성막의 실제가 된다. 제물과 드리는 자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의 봉사가 없다면 성막은 형식은 있지만 생명이 없는 건물에 불과할 것이다.
제사장의 봉사는 몸을 드림으로 시작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 세대로부터 구별 되어야 하고,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확증해야 한다.
1. 이 시대를 본받지 않음
몸을 드리려면 이 시대로부터 구별 되어야 한다. 제사장의 이마에는 여호와 성결(구별)이라는 표가 있다. 그는 하나님을 봉사하기 위해서 구별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를 따라서 살던 사람들이다. 가인의 때, 네피림의 때, 바벨의 때, 안에서 몸을 드리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전에 너희는 죄의 병기로 사단에게 드렸다고 했다(6;13참).
그러므로 하나님께 봉사하려면 전에 드렸던 곳에서 나와야 한다. 한 몸을 두 곳에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봉사는 몸을 드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와 같이 교회생활도 몸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전에 드렸던 곳으로부터 분별 되어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구별 되어야 한다.
교회생활은 단지 말씀을 듣고 간증하고 기도하는 것만은 아니다. 교회생활은 건축이다.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유기적으로 연합된 하나의 실체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충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생활이 곧 건축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한다. 시대는 하나의 건축이다. 사람들에 따라서 시대는 건축 된다. 노아의 시대, 네피림의 시대는 다 사람들에 의해서 건축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본받아서 사는 것은 그 시대를 건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건축을 두고 고 또 다른 시대를 본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본받는 것은 같은 모양이 되는 것이다(6:5참).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는 것은 그와 같은 모양이 되는 것이며(6:5참), 그 모양은 하나님의 충만으로서 교회로 건축 되는 것이다.
8장까지에서 언급된 선택, 부르심, 구속,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 등의 항목들은 창조에 속한 것이다. 제2의 창조다. 우리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신 결과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옛것이 전혀 없다. 옛 창조에 속한 것이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 속에 마저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새 창조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우리들에게 신분상에 변화를 가져오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우리들의 노력과 함께 한다. 밭을 받았으면 경작은 내가 해야 한다. 몸을 받았으면 몸은 내가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몸들(개별적)을 주시고 건축된 한 몸(교회)으로 받으신다. 이 한 몸은 실질적인 변화를 거친 신성한 몸으로서, 하나님의 거할 처소로 드려져서 그의 충만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 생각이 새로워짐
몸은 교회로 드려져야 하고 생각은 변화를 받아 새로워져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 다른 세계 안으로 들어가려면 생각이 새로워져야 한다. 같은 생각으로 다른 세계의 생활은 할 수가 없다. 교사의 생각으로 군인이 될 수 없고 군인의 생각으로 교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 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려면 생각이 새로워져야 한다.
어떤 믿는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천당에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보내준다 해도 거기서 살지는 못할 것이다. 생각은 그 사람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변화되어야 한다. 몸이 건축에 드려지려면 생각이 새로워져야 한다.
생각은 몸을 주관한다. 생각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몸이 드려진다 해도 합당한 용도에 사용 되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 되어 하나님의 선한 뜻, 기뻐하시는 것,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확증하라 하였다. 생각이 새로워짐은 변화의 핵심이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새롭게 할 것인가? 생각은 입장과 목표에 따라서 달라진다. 몸을 드리면 입장도 달라진다. 몸이 있는 곳에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생활 안에 있으면 생각이 교회를 위한 생각으로 변화된다.
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확증함
제사장은 율법에 정해진 법도에 따라서 봉사한다. 자의로 행해서는 안 된다. 법과 제도에 따라서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에는 법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왜 교회는 법도가 없는가?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무슨 법으로서 구속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이 없다. 그러므로 구속 받은 생명으로 교회생활 안에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확증해야 한다.
선악과를 먹고 그 지식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통제할 법이 필요하다. 법이 없으면 각자의 생각에 좋은 대로 행하기 때문에 혼란을 막을 수 없고 생각이 각각이고 많기 때문에 법은 더욱 많아진다. 편하게 살고 싶지만 그러려면 더 많은 법이 필요하게 된다. 이율배반이 일어난다. 악순환이다. 이것은 위치를 이탈한 인간의 운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인간을 구속하여 위치를 회복하고 교회로 불러 모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운 인류가 새로운 목표를 위하여 소집된 것이다. 새로운 목표는 구속 받은 몸으로 하나님의 거처로서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거처를 이루었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구별 되어 봉사함으로써 살아계셔서 사람과 교통하시는 하나님을 단체적(건축)인 봉사로서 표현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 유익하고, 그가 기뻐하시는, 즉 온전한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그의 표현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만유에게 나타냄으로써 그의 생명과 성품을 분배하시려고 사람을 지으셨다(창1:26,27참).
이 목적을 이루시려고 사람을 지으시고 노아를 구원하시고 아브람을 부르셨으며 이삭으로 이스라엘의 씨가 되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속하시고 새 생명을 주어 교회를 건축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로 부름 받은 사람은 이 뜻을 분별하고 확증해야 한다.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양심이나, 교정하려고 주어진 율법이나, 스스로 만든 종교나,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을 표현할 교회적 인간으로서의 소명 안에서 그에게 유익하고 기쁨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실행함으로 확증해야 한다.
이것은 정해진 법을 지키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는 살아계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때그때 그분의 뜻을 분별해야 하고 실행함으로써 확증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는다고 하였다(6:8). 그와 함께 죽은 자가 그와 함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