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고린도전서 서언
본문: 고전1:1-9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
말씀 요약
고린도전서 (1)
서언(고전 1:1~9)
고린도 전서는 바울이 주후 59년경 에베소에 머문 지 거의 3년이 다 되었을 때 문제가 있는 고린도 교회와 각처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다.(행20:31,고전16:8)
고린도는 헬라의 중요한 도시로서 아가야 지방의 로마 수도였고 4대 도시 중에서 상업과 문명에 있어서 뛰어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데미 신전이 있는 곳이고 여신 비너스를 숭배하는 본거지였으며, 애급과 아시아에서 온 몇몇 불건전한 신비종교의 중심지였음으로 소위“고린도의 축제”는 사치와 음란과 방종의 밑바닥이었다고 한다.
바울은 문화가 발달한 아덴에서 실패한 후에 장막을 만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에베소에 있으면서 매주 회당에서 전도하였는데(18:1-17) 회당장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안과 더불어 예수를 믿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침례를 받았고 (행18:8,) 주께서 고린도에 머물라는 특별한 격려를 하셨음으로 1년 반을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18:8~11).
그 후 에베소에 머물었을 때 (행19:1-)몇 가지 문제들을 교정하려고 고린도에 다시 방문(고후13:1)하고 돌아와서 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1). 발신자와 수신자(1~3)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부름 받은 성도들, 각처에서 그들과 우리의 주님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고 하였다.
“사도”란 보내어진 자(9:1~5,고후12:11~12,13.계2:27)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신약행정의 권위를 가졌다. (고후10:8,13:10) 교회는 사도들의 복음 전파로 설립 되었으며 그들의 가르침으로 양육 되었다.
“그리스도 안”이란 그리스도의 인격적 요소와 그의 영역 안에서라는 의미로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하나님께 속하도록 분별 한 영역이다. “거룩하여짐”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그에게 속하도록 분별되었음을 의미한다.
“부름 받은 성도들”이란 위치적으로는 세상으로부터 옮기고, 기질적으로는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로 바꾸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소집 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부름 받기를 이미 성도로 부름 받은 것이다.
“우리의 주님 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생명분배와 그의 행정을 누리도록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하여 활 당해 준 몫(골1:12)으로서 믿는 이들의 유일한 중심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은 예수를 자신의 생명이며 최고 권위로 영접한 사람들이며(롬10:14, 행9:14,21, 22:16).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청한다는 뜻이다. 간절히 부르는 것은 간절히 청하는 것이다.
2) 수신자들에 대한 격려(4~9)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한다고 하였다.
(1) 말씀과 지식에 풍족함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잘 받았고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복음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도록 전달 된 것이다. 사도는 이것을 말해내고 살아내는 사람이다. 즉 신성한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식은 전달되고 표현 된 말씀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그 말씀이 잘 전달되어 깊이 깨달아지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은 말씀과 지식에 있어서 풍족했다는 것이다. 잘 들었고 깊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일을 인하여 감사하다고 하였으며 이 풍족함이 있음으로 끝까지 너희를 견교하게 하실 것이라고 격려 하였다. 말씀이 확고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견고하여 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말씀으로 죄인들을 성도로 부르시고 그들을 견고하게 하여 자신의 건축이 되게 하신다.
(2) 하나님 아들 안으로 참여함에 대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아들 안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성도로 부르셨다. 아들 안에 참여하면 곧 바로 하나님 아버지 안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다.
우리는 아무나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고 그에게 참여할 수 없다. 인생은 범죄 함이 없었다 해도 생명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그에게 참여하도록 지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아들을 믿고 먹어서 유기적으로 연합 되어야 하나님에게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아들을 우리의 몫으로 주신 것이다(1:2).
바울은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쓰면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신성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잘못을 교정하기 전에 그들의 풍족함, 즉 말씀을 받고 깊이 이해함에 대하여 감사하고 이 말씀 안에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격려하였으며, 하나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통 안에 참여하게 하기 위하여 아들을 우리가 누리고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몫으로 주신 것에 대하여 소망을 불어넣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교통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통이 되었고, 사도들의 교통은 사도들과 교회의 교통이 되었으며, 교회의 교통은 지체들 상호간의 교통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신성한 교통으로 하나님의 교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참여)하게 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