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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우리의 지혜가 되신 그리스도
본문: 고전1:26-3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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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3. 우리의 지혜가 되신 그리스도 (1:26~31)
예수는 하나님을 떠나 창조의 목적으로부터 이탈한 인류를 구원하기에 온전하신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시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인류의 스승이라 부른 사람들은 모두 인간에게 필요한 탁월한 스승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필요와 소원을 위해 인류에게 보내심을 받은 종이다.
그는 인류가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의 필요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어리석은 자가 됨으로서 무시당하고 거절당했으며, 마침내 그 사람들의 세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제거당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려내셨다.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그에게 죽은 자가 된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먼저 한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시고, 그로 하여금 자신이 다시 살리심을 받음과 같이 모든 사람을 살려내서 하나님의 목표 (인간 본래의 목적) 안에 있게 하기 위하여 생명의 주가 되게 하신 것이다(행3:15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하신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에게 자신의 생명을 공급하여 그의 아들들이 되게하고, 그의 성품과 생명을 표현함으로서 그의 통치(분배)의 일을 대신하여 그의 나라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창1:26,27,계22:1~참).
그런데 사람들이 이 목표에서 이탈하여 자기 목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속하고, 회복 하시려고 한 사람을 택하셨다.
예수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들과 함께 죽고 그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 일을 위하여 완전한 자격자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종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기에 온전하신 그리스도시다.
1). 온전한 사람
길을 이탈하여 변질된 인류를 구원하려면 먼저 온전한 인간이 있어서 본이 되고 씨가 되어야 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누구나 인류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잘못이란 인간이 사는 데서 나타나는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불편한 것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근원에서 나타난 말단적인 증상에 불과하다. 원천이 있으면 흐르는 강이 생기고, 병이 있으면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단적인 증상치료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
인류구원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창조자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이 되고 씨가 될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창조자에게 죽기까지 복종하여 인간의 위치를 회복하고 지으신 이를 통하여 다시 살아나심(생명을 받음)으로써 새 피조물로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이 열매, 즉 온전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며 요소가 되는 것이다.
2). 온전하신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심에서 근원으로 돌아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천사들에게까지 참 사람, 모든 사람이 돌아가야 할 원형인간으로 입증되셨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 했던 그 사람으로서는 죽으시고, 생명을 주시는 이로부터는 살리심을 받았다. 죽음과 삶을 다 통과하시고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셨다(롬14:9). 그러므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기에 온전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으셨다.
3). 우리에게 지혜, 곧 의로움과 구속함이 되심
인간에게 필요한 지혜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가의 대증요법을 배웠고 커서는 기독교에서 대증요법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불가에 잠시 들러서는 해탈을 위해서 일생을 살고 계신 한분을 한 집에서 일 년 가까이 지켜본 일이 있다.
이들 중에서 불가의 노력은 가장 깊이 인생문제를 일소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인생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이 길이 내게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를 다니면서도 어떤 근본적인 문제에 접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나는 인생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승려가 될 필요도 없었고 수도사가 될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유가의 교훈은 가볍게나마 내 체질에 젖어 있어서 남에게 욕 얻어먹을 필요는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는 그런대로 또 유익하고 절간보다는 기호에 맞아서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생업으로 인하여 절박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렇지만 이것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 본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 여려서부터 안다고 했던 하나님에 대하여 의문이 일어났다. 그는 있는가? 그는 누구인가?...그 때다.
그의 존재를 찾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너는 피조물이다.”나는 이 말씀이 거부할 수 없는 선포로 들렸다. 그래서 무릎을 꿇었고 기쁨 가운데 교회봉사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삼 년 되었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를 통해 나를 부르신 것이다.
나는 인생문제를 가지고 고민한 일이 없다. 건강과 생업만 적당히 있으면 족했던 것이다. 이런 나를 왜 부르셨을까?
처음에는 목회를 하라고 부르셨다고 생각했으나 다음에는 나를 사람 되라고 부르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면서 차츰 나는 그분의 목적을 알게 되고 그분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내가 왜 인생이 되었고 부르심을 입었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와 그의 뜻과 그 나라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복음, 하나님의 복음이 알아진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복음이라는 것이 알아진다. 이 복음은 인간이 원하는 인생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것이다.
나라고 생로병사의 문제나 환경의 문제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런 문제를 인생 문제로 해서 고민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 해결 되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서 고민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싯달타는 호화의 극치에서 인생의 허무를 누구보다 더 깊게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환경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기에 의식주만 해결 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이 들려 온 것이다. 복음은 인생고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그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아는 것이며 지혜는 그렇게 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 곧 의로움과 구속함이 되셨다. 그는 온전한 사람, 온전한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하나님 관계를 바르게 하여 그의 나라가 되게 하는 지혜가 되셨다. 하나님 생명을 받는 지혜가 되시고, 그와 교통하는 지혜가 되시고, 그를 누리고 대신하는,....그 나라에 참여하는 모든 지혜가 되신 것이다.
"이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지혜를 말 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오직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 하시느니라"(2: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