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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몸은 주 안에서 신성함
본문: 고전6:12-20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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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몸은 주 안에서 신성함(6:12~20)
헬라인은 육체를 천시하였다. “육체는 무덤이다.”라는 속담이 있고, 에픽테토스는 “나는 시체에 얽매인 불쌍한 영혼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혼과 영이요 육체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사상에서부터 두 가지 태도가 나온다. 한 가지는 영혼을 위해서 육체의 욕망이나 본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한다는 금욕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으니까 육체로는 무엇을 해도 좋다는 쾌락주의다.
고린도에 널리 번졌던 것은 두 번째 사고방식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과 풍습에서 만연 된 육체적 쾌락주의가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경고를 하게 된 것이다.(9~11참)
한편 중국인들은 육체가 혼과 영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육체를 양생해서 장생불사를 구하려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육체밖에 없으니 육체에 상관된 인생의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것이었다.
교회는 주로 헬라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 더욱이 그들의 향락주의 위에 사도들이 전파한 그리스도인의 복음 안에서의 자유에 대한 말씀이 왜곡됨으로써 무가치한 육체를 가지고는 무엇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가장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배는 식물을 위해 있다”는 논리로서 육체는 본능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퍼짐으로서 본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풍조가 교회 안에도 들어왔기 때문에 바울은 “음식은 배를 위하고 배는 음식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패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하였으며 식물도 지나고 배도 지날 것이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은 영원하고 그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한 것이다.
단순하게 육체로 말한다면 동물적 가치밖에 없다고도 할 수도 있고, 고상하게 영혼을 가꾸려는 사람들에게는 방해거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보면 육체는 신성한 목적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서 산 혼이 되게 하였으며, 자신이 지으신 동산에 두시고, 생명나무 열매를 임의로 먹으라 하였고, 동산을 지키고 경작하라 하시고, 아담에게 함께 할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를 표현하여 대신 할 자로 지었다는 것이며, 생기를 불어넣어 산 혼이 되게 하였다는 것은 표현하고 대신할 도구로 지었다는 것이고, 동산에 두셨다는 것은 함께 살기기 위한 것이며, 생명나무 열매를 주신 것은 생명의 연결을 통한 영생의 공급을 받아서 하나님 삶을 삶으로서 배필이 되어 하나님의 동역 자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고전 3:9참).
이 얼마나 귀하고 신성한 것인가! 희랍인이 말한 영혼의 고상함이란 육체의 쾌락에 반대 되는 정신적 쾌락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육체적 쾌락도, 정신적 고상함도 아니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를 대신하고 표현하는 축복으로서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의 삶을 사는 최고의 영광인 것이다.
이로써 보면 육체는 배제해야 할 악한 것도 아니고, 생리를 따라서 마음대로 할 것도 아니며, 육체에 모든 소망을 걸고 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목적 안에 사용되어야 할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육체를 배제할 수도 있고 그것을 따라서 살 수도 있으며 그 것에 소망을 걸고 살 수도 있으나 나는 하나님의 신성한 목적을 위해 살 수 있는 자유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자유인가?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자유가 주어졌다. 동산 모든 나무의 과실을 자유로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자유 안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지 말라 한 것이다. 먹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면 먹지 말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모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금령도 있고 책임도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선포한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 알지 못하느냐 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 안에서 그의 기름부음으로 창조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의 지체들로 다시 났다. 그리스도는 크고 놀랍다. 하나님만큼 크고 그만큼 놀랍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표현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혼자로서 그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지체들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 지체들이 영광스러운 한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주적이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그가 없이 되어 진 것이 없는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하나님의 그리스도(기름 부으심) 없이는 되어 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그가 없이는 생명이 없고 빛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인 것이다.
그 몸은 말씀이 육체가 된 몸이며 은혜와 실제가 충만한 몸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 그는 그리스도시고 우리는 그의 지체들이다(요1:1~18참).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는 몸을 가진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하나님이 거하시고 활동하시는 성전이다. 단순한 육체가 아니다. 흙이 하나님 형상으로 빚어졌고 그의 생기를 받았으며 생명나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 되어 공급을 받고 지체들로서 그를 살아낸다.
지체들은 더 이상 흙이 아니다. 흙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저주다(창3:19참). 흙에서 나왔으나 이제 흙이 아니다. 정신적 만족을 위해서 무시해도 안 되고, 육체적 쾌락을 위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안 되며, 그 영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도 안 된다. 우리는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