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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덕을 세움(2)
본문: 고전8:1-13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줄 아노라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9.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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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덕을 세움
B.덕을 세운 사람(8:1~13)
고린도 교회는 복잡한 문제로 바울에게 편리를 보냈다. 결혼문제, 우상제물 먹는 문제, 그런데 바울의 대답은 아주 단순했다. 결혼문제는 하나님의 정하심, 주권적 안배를 받아들이라는 것이고, 우상제물 문제는 교회건축을 위하여 덕을 세우는데 중점을 두라는 것이다.
동산을 떠난 아담에게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판이 아닌 다른 판에 들어갔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은 지당한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은 세상기준으로 교회에 살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판이 달라졌다. 새 예루살렘의 바닥은 정금이라고 했고, 에덴에서도 금이 있는 온 땅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교회도 그 바닥(판)은 하나님의 신성이고 성을 세우는 유일한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인 것이다.
판은 하나님의 목적이고 수단은 인격이다. 인격은 오로지 이 목적, 즉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창조 된 것이다. 이 인격은 단순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문제를 단순화시켰다. 그에게는 한 가지 목표와 소원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와 교회,”인격과 건축, 이 얼마나 단순한가! 그러나 이 안에 모든 것, 창조에서부터 완성에 이르는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신약은 구약을 단순화 시킨 것이다. 하나님 같이 되려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많은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대상으로 구약이 제정 되었고, 그렇지만 그 많고 복잡한 율법과 계율들을 다시 한 인격 안으로 함축하고 정리 한 것이 신약이다.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니“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기록하리라”(렘31:31) 신약은 얼마나 단순한가!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이 되기 위하여 육체가 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 되셨으며, 생명주는 영이 되어 우리생명이 되신다.
하나님 마음과 뜻을 율법으로 표현하고 전달했던 구약은 이제는 한 사람의 생명이 되었고, 죽음과 부활을 거쳐 그 영은 우리 생명이 되었다. 단순해졌다. 생명 대 생명이 되었다. 편지와 계율들로 가려진 담은 없어지고 마음과 마음, 생명과 생명이 만나게 된 것 같이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면 단순해진다.
사람은 원래 단순했다.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형상으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인격적 도구였다. 그런데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인하여 복잡해졌다. 하나님 아닌 자가 홀로서서 하나님 같이 되려함으로 혼란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인간은 단순하다. 비행기는 복잡한 기계다. 그러나 그 안에 탄 승객은 단순하다. 승객의 방법은 단지 타고 있는 것이다. 타고만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그와 함께하면, 그의 법으로, 그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선악과로 인하여 복잡하게 된 아담을 십자가로 단순화시키고 아담이 스스로 만들어놓고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생문제를 처리하게 하셨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만물, 사람과 천사의 관계를 단순하게 정리하셨다. 단순해지면 쉽다. 수학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하는 학문이며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복잡한 인생을 십자가로 단순화 했고 바울은 그로 말미암아 단순한 사람이 되어 고린도교회의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대답했다.
복잡한 사람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단순한 사람은 단순하게 만든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단순해진 사람이었다. 다메섹으로 가던 그는 매우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담 안에서 율법 안으로는 왔지만 그 율법으로 인하여 또 복잡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잡아 공회에 넘기려고 살기등등하게 다메섹을 향하고 있었다. 그 때 단순한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어찌하여”라는 말에 그는 무슨 말로 대답했을까? 복잡한 인간의 말은 끝이 없을 것이다. 율법을 대고 계율을 대고 전통과 역사를 대고..모든 지식을 동원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생명 없는 지식의 나열이 아니겠는가? 그는 권세 앞에 엎드렸다 “주여 뉘십니까?”누구냐고 ? ...“내가 바로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행9:4참) 그 때 그는 눈에 비늘이 덮이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밝은 빛이 비치자 할 말이 없는 사람이고, 자기 앞도 못 가리는 사람으로 들어났던 것이다. 방금까지도 그는 유식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자타가 다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할 말도 없고 자기 앞도 못 알아보는 인간이라니...........
이런 사람이 세상을 뒤집겠다고 만용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그런즉 이런 인간들의 삶과 그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겠는가?
문명은 발전한다 해도 인간은 바뀐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문명과 함께 문제는 더 많아진 것이다.
유가에서는 자연법칙과 인륜으로 정리하려하고, 불가에서는 깨달음으로 해탈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로 일괄 정리하셨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로 정리 된 사람이었다. 생명이 처리 되고 우선순위가 정리 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생에 문제가 많은 것처럼 교회 안에도 아직은 문제가 많다. 십자가가 필요하다. 모든 인간에게 다 필요하다. 동산에서는 생명나무였으나 오늘 날은 십자가다.
문제는 관계에서 발생한다. 행복도, 불행도 관계에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서로가 쓰고 괴로운 관계다.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던 길에 마라에서 쓴물을 만났던 일이 길을 보여준다(출15:23참).
목은 마른데 마실 물이 썼다는 것이다. 백성은 또 모세를 원망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그 물에 던지라고 했다. 물은 달아 지고 백성의 원망은 그쳤던 것이다. 그 나무는 오늘날 예수의 십자가다. 쓴물을 달게 하는 십자가! 문제를 단순하게 하는 십자가! 복잡한 인간을 단순하게 하는 십자가! 모든 관계를 정상화하는 십자가!
십자가로 단순화 된 사람이 덕을 세운다. 교회를 건축하고 새 예루살렘으로 지어지며 신부로 단장 된다.
주여! 바울을 단순한 사람 되게 하신 것 같이 우리도 단순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 일만 있는 사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