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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예수의 사도(1)
본문: 고전9: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줄 아노라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9.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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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예수의 사도(1)
덕을 세운 사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 안에서 단순하고 명료한 사람이 되었다. 아담이 탐심으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팔아먹은 인권을 찾아서 사단의 속임수와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자유자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임 받은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참된 권리와 자유를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권리를 복음을 전하는 일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덕을 세우기 위해서, 즉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그 참된 권리와 자유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하여 힐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들에서 사도로 정의 된 사람들은 육신으로 예수와 함께한 제자들로 국한한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영적인 것임을 변명했고 자신의 삶이 오로지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증거 하려고 하였다.
1. 사도의 자격(9:1~3)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 내가 우리 주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내가 주 안에서 이룬 열매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너희가 나의 사도직분을 확증해 주는 표이다.”
사도란 희랍어에서 보내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사도는 주님께서 보내신 이로서 주님을 증거 하는 자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증거 하려고 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을 증거 할 자를 보내시는 것이다.
예수의 사도들은 친히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증인들이 되리라” (행1:8)하셨을 때 목격자들로서 증거 해 주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는 아담 안에 있는 세상과, 하나님을 믿고 공경한다는 유대 종교로부터 버림받은 분이기 때문에 증인들이 필요하다. 사도들은 그의 증인들이다.
또한 그의 가르침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복음이기 때문에 그는 증거를 받아야 한다. 인생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임마누엘로서, 죽으심은 인생을 대표하는 죄인의 모양으로서, 부활하심은 하나님으로 인한 새 생명의 맏아들로서, 살으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온 인류를 표함 하시는 분으로서 증거 되어야 한다. 이 일을 증거 할 자로 보내심을 받은 자가 그의 사도인 것이다.
보내심을 받은 자는 보내신 이를 알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뵈었다고 했다. 언제 뵈었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쉽게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그의 음성을 듣고 큰 빛을 본 것이 예수를 뵈온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예수를 만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또 이런 방식으로 예수를 만났다는 사람이 다 예수를 만난 사람이냐는 것이다. 몰몬교의 창시자 죠셉 스미스도 이런 방식으로 예수를 만났고 금토판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뵈었다, 보았다는 것은 그의 육신을 보았다거나 어떤 형상이나 음성을 들었다는 것과 다르다. 보고 만났다는 것은 안다는 뜻이다. 보고 만났다고 해도 알지 못할 수가 있다. 예수를 보고 만났던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은 소수였고 그들이 사도가 된 것이다.
바울이 예수를 알지 못했다면 그는 다메섹의 이적 현상만을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사도들은 그들이 본 표면적 현상들을 통해서 예수를 알았던 것이다. 알아야 증거할 수가 있는 것이다.
1). 임마누엘로 함께 하심을 증거함
마태는 임마누엘이라 했고 요한은 말씀이 육체가 된 독생자라고 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생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인생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있는가? 이 우주적인 숙제에 대한 답은 위의 두 증인들의 증거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옛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한다” 함은 율법과 의식들에 참여함이었고, 간혹 특별한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동행한 것이었으나, 보편적일 수 없었고 영속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이 자신의 법과 생각을 사람 속에 두심으로서 함께 한다고 약속하셨고(렘31:31), 이 사실이 예수 안에 나타난 것을 보고 사도들이 “임마누엘”로, 혹은 “성육신”으로 표현하여 증거 한 것이다.
2). 죄인의 모양으로 죽으셨음을 증거함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죄인의 모양으로 사셨다. 그리고 유대종교가 용납할 수 없는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는 우리의 육체 됨(아담-죄인)과 율법에 대한 범법자(롬3:23)로서의 형벌을 대신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지으신 이를 거역하고 지음 받은 위치를 이탈했다. 이것은 죽음에 해당된 죄다. 또한 하나님 같이 되려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사형에 해당한 것이다. 모두가 재창조를 위해 끝나야 한다.
3).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의 주(창시자)가 되심을 증거함
부활은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죽음에 내어주신 것은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기대와 상상과 다르다. 다른 차원의 창조로서 재창조다. 하나님과 연결 되고 연합한 생명이며 창세기 2장의 목표를 완성하기 위한 생명이다.
4). 인류를 포함하심을 증거함
예수님은 특별한 방법과 노력으로 초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우리 중 아무도 그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바람을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을 보고 혹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혹은 메시야(구원자)로 알고 따랐던 것이다. 위대한 사람을 통하여 혜택을 얻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죄인들과 함께 같은 모양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위대한(?) 구원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우리를 포함하고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셨다. 그에게 비범함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에 의해 죽임 당하시고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신 것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보면 예수로 인하여 아담 안에서 저주를 받고, 종교(율법) 안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도 내 소원이나 의지나 노력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림 받는 것은 더욱이 나의 어떠함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예수 안에 포함 된 사람은 누구나 이 길에 있다. 예외가 없다. 믿음만 필요하다. 바울은 이 놀라운 계시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로마서를 통해서 주와 연합하는 놀라운 비밀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그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5). 예수를 만난 사람임
사람들은 육신으로 예수를 만났던 사람이라야 사도라 할 수 있다는 관념에 잡혀 있었으나 우리가 예수를 아는 것은 육신으로 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울이 명백히 밝혀주었다. 인격으로 만나고 영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를 인격으로 밝히 보여주고 증거 한 사람이 사도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도로 파송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