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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예수의 사도(3)
본문: 고전9:26-27,10:1-13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9장
26.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10장
1.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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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예수의 사도(3)
3.사도의 경주 고전10:1~13.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의 경주
바울은 경주자로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달린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자신을 절제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예를 볼 때, 정해진 경주장에 왔다고 해도 잘못하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고한다는 것이다.
“조상들은 다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이 반석은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구름(구름기둥) 아래 있었다 함은
성령의 인도 아래 있음의 예표이며,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는 것은
십자가 안에서 죽음과 삶의 길을 통과함의 예표이고,
'모세와 함께'라 함은 '그 안에 포함되어' 라는 뜻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함의 예표이며,
신령한 식물을 먹었다 함은 만나를 먹은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살과 피로 먹음의 예표이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는 것은
쪼개진 반석으로부터 흐르는 생수를 마셨던 것으로서
십자가에서 흐르는 피로 구속, 곧 죄 사함 받음의 예표이다.(이 반석은 그리스도임)
그러나 저희 다수가 멸망을 받았다는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외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과 모세와 아론마저도 가나안을 바라는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것으로서 오늘 우리에게 주는 경고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의 역사다. 바울은 이 예를 들어서 교회에 경고를 하고 승리하는 경주를 위해 격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교회의 예표이고 그들의 역사는 하나님 경륜의 예표다. 그러므로 교회는 향방 없는 경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표로 제시된 도면 위에서 경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
태초에 창조된 우주는 사단의 개입으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싸였고 하나님의 신이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를 동산에 두어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하는 영역을 지키고 경작하게 하셨다.
그러나 다시 사단이 개입함으로 사람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같이 되려고 동산을 떠나서 바벨을 건설하고 하나님과 그 나라를 대적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을 불러내서 후사를 주시고 그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으나 양식을 따라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바로에게 억류되어 그의 국고성을 건축하는 노예가 되었다.
여호와는 그들을 다시 불러내시고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셔서 광야로 이끌고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으며 결국에는 가나안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그 나라에 참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고 새 생명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과 어린양이 통치하는 새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하나님 경륜의 예표로서 미리 주어진 것이다.
경고
문제는 이 예표 안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실패하여 이스라엘 나라에 참여하지 못 했는바 오늘 목표를 향해가는 교회에게 준 경고가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표들 안에서 확실한 길을 걸어갔다. 구름과 바다 가운데를 모세와 함께 지났으며, 하늘의 양식을 먹고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를 마셨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으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으므로 멸망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악을 즐거워했고 탐욕을 가졌으며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을 즐겨했으며 주님을 시험하고 원망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일들로서 말세를 만난 우리를 위하여 경계로 기록 되었다는 것이다(11).
완성의 때
말세란 성취나 완성을 의미하는 헬라어에서 온 말이다. 이제 우리는 예표의 때가 아닌 성취와 완성의 때에 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때는 말세다. 하나님의 경륜은 여기서 완성 된다. 예수 안에서 시작된 새 생명, 이것은 예표가 아닌 실재다. 우리는 예표의 때에 있지 않고 성취의 때에 있다.
예표의 때에는 단지 믿고 바라만 봐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이 오셨다. 실재가 온 것이다. 천국은 예표의 성취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고, 내일이다 모레다 할 수 없다. 영원한 현재다. 보화는 지금 밭에 있고, 값진 진주는 지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예표의 때에는 많은 사람이 광야에까지는 구원을 받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실재의 때다.
말씀이 육체가 되었으며 죽고 다시 살았다. 모세의 때에는 모세만큼 구원에 참여하였으나 예수의 때에는 예수만큼 구원에 참여한다.
모세는 가나안을 바라보는 곳까지 인도하였으나 예수는 아버지의 보좌 앞까지 인도한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나 은혜와 실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이스라엘은 정해진 예표 위에서 육신으로 모세와 함께 예행의 길을 갔다면 우리는 이 예표의 실제이며 실행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 안에서 이 길을 누리며 간다. 그들은 육신으로 그 모양을 경험했으나 그 실제는 보지 못하고 육신의 일만을 도모하다가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생명 안에서 그 실재를 누린다. 그러므로 천국에서까지 육신의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육신의 일들은 모형으로 족한 것이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에 이르는 노정은 세상에서 해방되어 천국에 이르는 노정의 예표이며, 육신에서 해방되어 생명에 이르는 노정의 예표이고, 사단에게서 구속받아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노정의 예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과 세상과 육신과 사단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과 어린양이 통치하는 그 나라를 향하여 경주해야 한다. 경주자에게는 시련이 따른다. 그러나 시련은 연단을 통하여 주님의 쓰심에 더욱 합당한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