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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의 상
본문: 고전10:14-22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19.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22.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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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주의 상
(고전 10: 14~22)
고린도 전서 10:1~13까지 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의 첫째 부분(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을 들어서 경주의 문제를 말하고, 14절 부터는 주의 상(잔치)에 대하여 말한다. 경주의 목표가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에 참여하는 것은 잔치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잔치의 하나님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었으며 그것을 지키고 경작하게 하셨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배설하신 잔치에 사람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동산은 함께 먹고 누리고 노는 곳이다.
두 번째는 가나안을 준비해 놓고 아브람을 불러내서 “내가 네게 지시 할 곳으로 가라...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천하 만민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하시고 헤브론(교통-잔치)으로 인도 하셨다.
세 번째는 애급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불러내서 광야에서 회막을 건축하여 상(제단)에서 교통하고, 조상에게 약속한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날 저녁에 제자들을 모이게 하여 상을 베푸시고 떡과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먹으라. 또 식후에 잔을 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니라” 하셨다.
또한 사도 요한은 계시의 완성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보았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잔치로 시작해서 잔치로 완성된다는 말씀이다.
먹음으로 하나 됨
희랍인들은 세계는 정령들로 충만하고 모든 것에는 그것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유대인들도 쉐딤이라는 것이 있어서 빈 그릇이나 공간에 숨어있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특별히 제물을 드리면 그 제물 안으로 귀신이 들어가고 그것을 먹는 사람 속으로 그 귀신도 함께 들어간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먹는 다는 것은 음식과 사람, 사람과 사람간의 신비한 교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은 사람 속에 들어가서 사람의 살과 피가 됨으로 그 사람과 하나가 된다. 이와 같이 제물을 먹는 자는 그 제물과 하나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념과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의 제물을 먹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귀신의 제물을 먹는 자는 귀신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귀신의 상에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니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16~22)
좋은 땅의 풍성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서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좋은 땅의 풍성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됨으로 누리는 풍성의 예표가 되었다.
하나님의 동산은 풍성했고, 아브람에게 그 땅에서 준 약속은 축복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땅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예표했고, 주님이 정하신 상(잔치)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누리는 새언약이었으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하나님과 사람의 최종적 연합의 실제였다.
주의 상은 귀신의 상과 다르다. 왕의 상을 생각해보자. 이름도 성도 모르는 풍성한 진미들로 넘칠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의 풍성에 대하여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매고 왔다고 했고 약속 된 땅에 들어가서 그 모든 풍성을 누렸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풍성에 대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들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했던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하나님과 사람은 생명과 형상으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왕과 백성으로서, 완전한 연합 안에서 서로를 누릴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상이며 영광의 풍성의 상이다.
귀신의 상을 경계함
우상숭배는 무엇인가? 주의 상을 떠나서 귀신의 상에 참예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상을 떠나면 귀신의 상으로 가서 만물과 만사에 숨어있는 정령들과 교제하며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귀신이니 정령이니 하면 웃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은 그렇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믿음을 따라서 그것들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 작용하고 영향을 준다. 옛 사람들이 귀신과 정령으로 표현했던 그것들은 만사와 만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행사하고 영향을 주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씀은 오늘도 내일도,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같은 문제이며 경고의 말씀이 된다. 귀신과 정령들은 오늘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바벨로 가게 하는 그 무엇이다. 인격을 유린하여 경륜의 중심에서 빗나가게 하고, 교회를 변질케 하여 세상과 혼합을 이루게 하며, 하나님의 경륜을 방해하는 요소다.
그러므로 우상이나 제물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신으로 인하여 스며들어오는 그 무엇은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교회를 무시하게 하며 형제들과 분열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그 근원이 모두 우상숭배에 있는 것이다.
주의 상을 누림
바울은 분열을 다루는 고린도전서에서 우상제물을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주의 상에 참예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룬다. 분열은 우상을 섬김으로부터 오고, 연합은 주의 상에서 한 떡을 먹음으로 한 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땅의 풍성은 그 백성의 삶의 원천이었다. 그 풍성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왕국을 세웠으며 대적을 물리쳤다. 그 땅은 우리 삶의 원천인 주의 상의 예표다.
좋은 땅이 그 백성의 삶의 원천이었듯이 주의 상은 거룩한 잔치로서 우리의 삶의 원천이다. 주의 상의 주 재료는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몸에 참예함이라” 하였다.
주님의 피와 살은 영생의 양식이다. 주님의 상에서는 이 양식을 먹음으로 이 양식을 누린다. 좋은 땅, 하나님이 주신 그 땅에서 풍성한 양식이 나오듯이 그리스도에게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풍성이 나온다. 하나님의 깊음이 나옴으로 우리 삶의 원천이 된다. 분열은 가고 연합이 온다. 어둠은 가고 빛이 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한량없음을 생산하는 그 땅, 약속의 땅, 좋은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