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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주의 상(2)
본문: 고전10:14-22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19.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22.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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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주의 상(2)
(고전 10: 14~22)
교통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심
동산에
상은 교통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교통을 위하여 동산으로 상을 제정하셨다. 동산은 먹을 것이 풍부한 하나님의 상이었다. 이 상에는 사람이 임의로 먹을 수 있는 각종 열매가 있는 나무들이 있었고 특별히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통을 위해서 생명나무를 두셨다.
모든 생물은 외부로부터 공기를 마시고 음식을 먹음으로 생존한다. 이것이 생물의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공기와 음식은 먹으면 육체를 양육하고 보양하며,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들의 열매는 혼을 위한 것이고, 생명나무 열매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한 마음, 한 생각으로(렘31:31참) 살기 위해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사람에게 상을 마련하시고 함께 사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사실, 영이신 하나님과 혼-육체인 인간이 교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본질과 성품이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통을 위한 상을 마련하셨다. 하나님과 사람은 상(먹음)을 통해서 교통함으로써 함께 하고 그의 경륜에 참여하는 것이다. 믿음이 의지에 관계 된다면 먹음은 생명의 문제다.
성막에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했다. 그러나 서로 간에는 교통이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놀라운 이적을 보고 감탄했지만 그 이적을 행하신 이가 어떤 분인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서로가 생명에 무관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산으로 부르시고 백성과의 교통을 위하여 한 상을 마련하라고 명하셨다. 명을 받은 모세는 성막을 건축했는데 그 내용은 제단과 떡 상과 향단이었고 이것들은 모두가 하나님과 사람이 먹음으로 교통하기 위한 몇 가지 상이었다.
제단과 향단이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떡은 열두지파가 함께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위에는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덩이의 떡이 진설 되어 있고 제사장들은 이 떡을 매일 드리고 매일 양식으로 받아먹었다. 매일의 교통이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상에서 매일의 교통을 유지하면서 광야 길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이다.
유월절에
이스라엘은 유월절이면 식구가 함께 모여 한 상에서 유월절 음식을 먹고 애굽에서 나오던 날을 기념한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시고 너희 대대손손이 이를 기념함으로써 너희를 구속한 나 여호와와의 교통을 영원히 계속하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예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상을 마련하셨다. 이 상은 새 언약을 세움으로써 영원한 연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상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위한 생명의 최종수단이었다. 이 상 이전의 상은 모두가 이 상을 위한 예표였고 상징이었다.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가는 길은 네 가지다. 순종의 길, 믿음의 길 , 먹음의 길, 누림의 길이 그것이다.
순종의 길
동산의 아담에게는 순종을 통한 누림의 길이 마련되었다. 먹으라는 것은 무조건 먹고 먹지 말라 한 것은 무조건 먹지 말았어야 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무조건 시행해야 한다. 명령은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다. 믿음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사단에게 속아서 이 길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였으며,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 한 것이다. 첫 번째 누림의 길이 어그러진 것이다.
믿음의 길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수 없는 인간에게 믿음의 길을 주셨다. 믿음은 증거를 먼저 보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증거를 먼저 보여주시고 믿으라고 하신다. 창세기 3장 이후에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길도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으며 온전하지 않았다. 인간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전한 누림이 없었던 것이다.
먹음의 길
하나님은 다시 새 길로서 먹음의 길을 마련하셨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사람의 마음속에, 생각 속에 넣어준다고 했고(렘31:31), 이 약속대로 수백 년 후에 말씀이 육체가 된 한 사람이 탄생하였다(요1:18). 그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 하셨으며, 거리껴하는 제자들에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셨다(요6장 참조).
또한 잡히시기 전 날 저녁에는 제자들과의 상을 베푸시고 떡을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먹으라 하셨고, 잔을 주시며 이것은 내 피니 받아 마시라 하였다. 새 언약을 약속하는 상이었던 것이다(눅22:19,20참).
제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을 보고 모두 자기들의 옛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는 양식이 되기 위하여 겟세마네에서 아버지께 간청하시면서, 골고다에서 하나님께 절규하시면서 인생으로서 고운 가루로 갈렸던 것이다(막14:36,15:34참).
하나님께서는 그 가루로 떡을 만들어 주셨고(부활)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먼저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서 생선을 구워놓고 먹으라 하셨다. 제자들은 이 고기를 먹고 눈이 열리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떡(부활하신 주님)을 먹고 구속을 받아 한 몸이 되었으며, 이 떡을 먹고 구속을 받은 모든 사람은 교회가 되어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이를 기념하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그 영은 최종완성의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너희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다(계3:20). 그날에는 우리가 주님과 한 상에 마주 앉아서 더불어 먹을 것이다
지금 살아계신 주님을 누리는 그의 몸인 교회와, 이기는 자들이 누릴 천년왕국과, 우주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단장될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먹음의 교통을 통해서 조성 된 것이다. 교통의 완성은 완전한 교통, 즉 믿음을 거쳐 먹음으로 온다.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먹음으로 완전한 연합에 이르고 완전한 연합에서 완전한 교통이 이루어진다. 식물이 내 몸 속에 들어가서 소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 나와 한 생각 한 마음이 되겠는가? 아침에 먹은 식물은 내 몸이 되고 내 몸에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하는 거리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땅만큼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먹어서 하나 되지 않고서는 무슨 방법으로도 사람이 그와 같은 마음, 같은 생각으로 동행, 동역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마음, 한 생각을 누리는 것은 먹음의 결과다. 먹음은 순종과 믿음을 완성하여 누림에 이르게 한다.
양식이 되신 예수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먹는가? 예수를 먹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먹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고운 가루가 되셨고, 하나님의 다시 살리심을 인하여 먹을 수 있는 한 떡이 되셨다. 예수는 죽으셔서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먹는 음식이 되셨다. 그가 고난을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함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함은 그가 우리의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인생의 길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음식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모세까지도 우리와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선생은 되었으나 우리의 양식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와 우리,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음식이며 상이시다. 이 상을 다른 상과 비교할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을 은혜와 실제로 누리는 유일한 상이시다.
순종과 믿음과 먹음에는 각각 누림이 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에게 상을 베풀어 주셨으나 아담은 먹지 않음으로 불순종에 따르는 저주를 누렸다. 또한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것을 믿음에는 온전하지 못했으나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기에 그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누렸으며, 제자들은 가루가 되신 예수를 보고는 먹지 못했으나 떡으로 만들어진 주님을 먹고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 영의 풍성을 누렸다. 그리고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의 누림을 기대하게 되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은 사람들은 왕들로서(승리자들) 천년왕국에서 그 승리를, 새 예루살렘에서 진주 문으로 누릴 것이며, 단장된 신부로서 열두 가지 보석이 되어 새 예루살렘의 성곽으로서 만국을 비췰 것이고, 만국이 그리로 들어오는 유리 같은 정금 길을 누릴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