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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주님의 만찬을 받음
본문: 고전11:17~34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7.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19.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함이라
22.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찌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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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주님의 만찬을 받음
고전11:17~34
주님을 따르는 길은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절대적이고 유일한 권위 아래서 주님의 만찬을 합당한 방법으로 먹고 마시며,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고 전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왕국과 함께 오실 것이다.
습관적 애찬은 분열을 가져옴
그런데 교린도 교회는 모일 때 분쟁이 있고 편당이 있음으로 애찬(아가페)도 함께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하물며 주님의 만찬이랴! 그래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당시의 희랍사회에서는 에라노스라는 회식습관이 있었는데 친한 사람들끼리 각각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함께 먹으면서 사교를 한다는 것이다. 이 풍습이 오늘 날 서구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풍성하게 하면서 가족끼리 혹은 친한 사람들끼리 친교를 하는 관습이 된 것 같다.
교회 안에도 이런 관습이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소위 애찬이라는 것이 되었는데 교회는 끼리끼리도 아니고 친한 사람들끼리도 아닌 여러 방면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희랍사회는 계층 간의 격차가 심한 곳이었다. 유식과 무식, 부와 간난, 높은 신분과 낮은 신분, 주인과 노예,....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교회라는 곳에서 지체로서 몸을 이루고, 형제로 함께 모인 것이다.
이것은 바벨에서 갈라진 이후 처음 발생한 새로운 사회의 모델이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새싹을 보여주는 신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의 본성은 또다시 일어났다. 다시 끼리끼리 합함으로서 계층 간의 격차가 드러나고 갈라진 것이다.
먼저 먹고 나중 먹은 것이 굶주림과 취함을 가져왔다는 것은 끼리끼리 먹음으로서 다시 계급의식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강하게 책망하고 애찬을 먹으려거든 갈라지지 말고 함께 할 것이며,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주님의 만찬을 먹음
주님의 만찬은 그가 친히 초대한 식사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 이와 같이 잔을 가지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하였다.
바울은 사회적 풍습이 교회에 들어와서 유익하게 정착하지 않고 아담의 본성에 의한 분열이 표출 된 것을 보고 곧 바로 주님의 만찬을 제시하였다. 세상 풍습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교회에 들어와서 유익이 되기 어렵다. 교회는 주님의 상에서 주님이 준비하신 만찬을 합당하게 먹고 그 안에서 교통하여야 한다.
세상의 만찬은 끼리끼리 모여서 각자가 준비해온 음식으로 서로를 즐기는 것이지만 주님의 만찬은 주님이 친히 자신의 몸과 피를 상 위에 놓고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과 이 피를 함부로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몸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죽으신 육신의 몸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된 인생을 구속하기 위하여 육체가 되신 아들을 보내셨다. 그러므로 그의 육체의 죽으심을 기념(새김)함으로서 구속을 확신하고, 그가 왕국과 함께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구속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그 피는 새 언약을 위한 것이다. 피는 생명이다(신 12:23). 이 생명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물로 드려졌고, 우리를 받으시는 은혜로 분배 되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생명 안에 새겨진 언약으로서 옛 언약과 다르다. 옛 언약은 율법으로 돌비에 문서로 새겨졌으나 새 언약은 죽고 다시 산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우리 생명 안에 새겨졌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먹고 그 생명(영)을 마실 때 언약은 새겨진다. 우리가 합당하게 그의 전부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 안에는 그의 죽으심과 생명이 새겨지고 죽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인격이 새겨진다.
합당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가 육체가 되셨음은 나를 포함하였음이며, 육체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내가 육체가 되었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는 말씀이 육체가 된 독생자이고, 나는 선악과를 먹고 (창3:5)천사와 결혼함으로서 (창6:3,4참), 하나님의 신이 함께할 수 없는 육체가 된 인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육체가 된 인간들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육체가 된 인간으로서 예수는 우리 안에, 우리는 예수 안에 포함 되어 함께 저주를 받은 것이다. 파리약을 뿌리면 나비도 함께 죽는다. 파리와 나비는 곤충 안에 서로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죽은 것은 또 함께 다시 살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심판 받으시고 저주 받으심으로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는 끝이 났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서 우리도 다시 살아났다.
그가 육체가 되심으로 우리는 그 안에 포함 되었고,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에 포함 된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 되었다.
주님의 만찬은 이 감사와 함께 한다. 이 감사가 없이 주님의 만찬에 참예하는 것은 주의 몸을 욕 되게 하는 것이다. 세상만찬에 참예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만찬에 참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가 이 만찬에 참예할 수 있는 가를 확증하라는 것이다.
구속하는 육체를 부인하고 다시 살리는 피(생명)를 부인하면서는 주님의 만찬에 참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
에라노스(회식)를 변형시키려던 소위 애찬이라고 불리어졌던 만찬은 사회적 계층 간의 격차만을 더욱 드러내었다. 교회는 주님의 상에 모여서 주님의 만찬(살과 피)을 먹고 새겨서 살며 교통하고, 주님이 그의 왕국과 함께 올 때까지 그를 전해야 한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