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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님의 만찬
본문: 고전11:23~29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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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주님의 만찬
기념하고 전파함
고린도교회가 사랑과 교통을 위해 모여서 식사를 함께 했던 소위 애찬은 계층 간의 격차만을 들어내고 분열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바울은 이를 강하게 책망하고 자기가 받은 주님의 만찬에 대한 계시를 제시하였다.
주님께서는 완전한 교통을 위한 하나의 몸을 위해 친히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으로 잔치를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모으셨다. 이 잔치는 하나의 몸, 하나의 생명을 위한 것이다.
하와는 아담의 생명을 대표하는 갈빗대로 지어졌다. 그러므로 아담은 이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였고, 여호와께서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되라 하였던 것이다. 하나의 생명, 하나의 몸, 이것이 완전한 연합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문화를 만들었고 이 문화는 인간들을 각각의 계층으로 분열(바벨) 시켰던 것이다. 이 분열이 교회 안에도 들어왔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모여도 결과는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다. 모순되게도 좋은 목적으로 일한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분열의 주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시고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또 이와 같이 잔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 하셨다.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것은 “...에 이르도록” 하라는 뜻으로서 새기라는 말이다. 돌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게 하듯이 생명에 각인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그의 왕국을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마귀에게 유린 된 인간을 되찾아서 창조의 목적대로 자신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율법을 주셨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율법을 주신 것은 이미 유린 된 인간을 돌아오도록 가르치는 것이었으나 인간이 너무 깊이 빠져있음으로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셨다. 그는 죽음을 통하여 만유를 포함한 구속(되돌림)을 이루시고 인간을 유린하고 조롱하는 거역한 천사에게서 인권을 회복하심으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우편에 오르셨다.
승천하였다는 것은 공중 권세 잡은 자, 즉 인간을 유린한 마귀를 제치고 하나님 통치의 영역으로 오르셨다는 것이며, 보좌 우편에 않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정의 주권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이 주권은 구속의 결과로 얻으신 교회를 통해서 다시 오실 주님의 왕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신약의 요점은 십자가를 통한 구속과, 구속의 결과로서 교회와, 교회의 승리로 다가오는 왕국에 있다. 주님의 만찬을 행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 구속을 새겨 전파함으로서 왕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구속 받은 사람들은 한 덩이의 떡이 되어 교회를 이루었다. 주님은 죽으심의 결과로 교회를 얻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주님이 왕국을 가지고 다시 오시게 하기 위하여 그 때까지 그의 구속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때까지의 교회 존재 이유다.
교회는 구속과 왕국 사이에 있다. 구속과 왕국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피 흘린 양이 왕이 되어 그의 왕국을 세운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지식으로나 선한 마음으로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있다.
이 건널 수 없는 강에 누가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인가?
세상에 어디에 이런 다리가 있는가? 창세 이래로 지금까지 이런 다리가 없다는 것이 우주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 사자와 어린양 사이, 왕국과 구속 사이,......여기에는 교통하고 연합하는 다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죄 없는 어린양이 이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매일 같이 제단에서 번제물로 드려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 단번에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히9:12)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교통하는 왕복차선의 길을 위한 다리를 놓으신 것이다.
주님 자신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다리가 되신 것 같이 교회는 구속과 왕국 사이의 다리가 된다. 이 다리로서의 교회를 얻으신 주님은 이제 보좌 우편에서 땅을 향한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하여 주권을 행사하신다.
교회는 주님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산 바 된 그의 죽으심의 유일한 소득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왕국이 임할 때까지 자신에게 새겨진 구속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 새겨지지 않으면 끝까지 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밤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고, 바울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해야 한다고 하였다.
만찬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정과 관계 된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을 마치면서“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26:29) 하셨다. 왕국을 기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행정은 구속 안에 있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시행 되고 왕국은 교회와 더불어 온다. 교회는 땅위에서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주님의 몸이다.
선포하자! 우리 위해 죽으신 만유를 포함한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선포하자! 우리가 선포하면 주님은 오신다. 구속을 선포하자! 인격회복을 선포하자! 잃었던 생명을 되찾았음을 선포하자! 주님의 죽으심의 진실하심과 그 능력을 선포하자! 우리가 선포하면 주님은 오신다. 주님은 우리의 선포를 통해 왕국과 함께 오신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