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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건축을 위한 은사들(1)
본문: 고전12:1~14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 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2: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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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건축을 위한 은사들(1)
고전12:1~14:
주님의 살과 피로 준비 된 만찬은 그의 몸을 위한 것이었고, 몸은 은사들을 수단으로 하여 건축되기 때문에 몸을 위한 만찬 후에 은사들을 다루고 있다.
은사들은 교회건축을 위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많은 은사들로 인하여 오히려 조용하지 못한 교회였다. 바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글을 보냈는데 그 요점은 은사는 개인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 건축을 위해 주신 것이라는 것과 특별히 유익한 것은 주님을 말해내는 은사와 형제를 사랑하는 은사라는 것이다.
1. 주님을 말해내는 은사
고린도교회는 이방에 있는 교회였고 그들은 전에 말 못하는 우상이 이끄는 데로 끌려갔던 사람들이다. 말 못하는 우상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들의 우상이 그런 것처럼 자신들도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교회건축의 구성원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건축하려면 첫쩨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따라서 말을 해야 한다. 말씀함이란 하나님의 뜻을 말해내는 것이며 주 예수를 증거 하는 것이다.
당시에 교회는 핍박 중에 있었고 그 후 더욱 심한 핍박을 받았다. 그 때 핍박하는 자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놓고 “예수를 저주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핍박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런 일이 반복 되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말 못하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면 우상이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 말도 못해도 상관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심으로 자기를 계시하는 분이다. 말씀하심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하심으로 사람들을 부르셨으며, 최종적으로는 말씀이 육체가 되어 인생 가운데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해야 하고 또 말을 하게 된다. 핍박하는 자들에게 “예수는 주시다(주 예수)” 하던지 “예수는 저주 받은 자라” 하던지 좌우간에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말씀함으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말씀함으로 주 예수를 증거 한다. 결과는 건축이다. 말 못하는 우상을 따를 때와는 다르다. 말 못하는 우상을 따를 때는 말 하지 못하니까 각자의 생각대로 살아서 바벨이 된다.
그러나 이제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그 말씀을 소화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말하고 주 예수를 증거 함으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은 생명의 성숙과 관계 된다. 성숙한 만큼 말해낼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생명의 성숙으로 건축 된다. 성숙이 없다면 말함이 유치해서 그 건축은 유치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생명의 성숙과 함께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말하기에 끝이 없는 생명이며. 주 예수로 인하여 다시 주신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일차적 생명 안에는 아직 죽음이 있었지만 다시 주신 생명은 죽음을 통과하였음으로 다시는 죽음이 없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 생명은 영원히 말해내야 하고 말해내기 위해서 생명의 성숙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하심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인격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보내셨고, 세상은 이 사람을 거부하고 버렸지만 하나님은 다시 일으키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사람을 말해내는 것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말씀하셨다. 이 사람을 보라고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들을 택하여 부르시고 양육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가 우리를 포함하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이라고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말하고 전해야 한다.
2. 사랑으로 건축하는 은사
바울은 여러 가지 은사들(12장)을 말한 후에 그래도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라 하였다(13장). 사랑은 왜 가장 크다고 하는가? 사랑은 생명의 성숙과 함께 하며, 교회 건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건축은 천사의 말함이나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꾕과리(알아듣지 못하는 말-방언)로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또한 예언하는 능력이나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다. 교회는 오로지 생명의 성숙에 따른 사랑으로 건축 되는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려,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그러므로 예언도 패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패하겠지만 사랑은 영원히 교회와 함께 할 것이다.
어린아이 때에 필요했던 것들은 장성하면 다 버리게 되고
부분적으로 알던 것들은 온전한 것이 올 때에 다 패하여진다.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던 것들이 얼굴과 얼굴로 마주 보는 것 같이 될 것이며, 지금은 주님을 아는 것이 희미할 지라도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나 그중에 제일은 사랑인 것이다.
신비한 은사들은 생명(인격)과 무관하다 그러나 사랑은 생명(인격)과 그 성숙에 관계 된다. 그러므로 더 좋은 것(장성한 것)을 사모하라 하였다(12;31).
생명의 성숙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에 양식이 되고 생명의 성숙에서 나온 사랑은 연합을 이루게 한다. 교회의 성숙은 생명의 성숙과 함께하고, 주님의 왕국은 교회의 선포와 함께 온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살과 피를 먹고 생명이 온전하게 자라서 말씀으로 주님을 간증하고, 사랑으로 주님의 몸을 돌보아야 한다. 몸을 돌보는 것은 지체들을 돌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