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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사랑을 따라 구함
본문: 고전14장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고전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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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사랑을 따라 구함
고전 14장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고,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한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께 속하고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사랑을 따라 구하지 아니하고 각자의 기호와 유익을 따라 구하였으므로 은사들로 인하여 혼란을 가져왔던 것이다.
바울의 목표는 생명과 건축이었다. 12장에서 여러 가지 은사들에 대하여 말하고 13장에서는 사랑을 말했으며 14장에서는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했다. 은사들은 생명-사랑을 따라 구해야 하고, 그 안에서 합당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통제 되어야 한다.
그 사랑 밖에서 행사 되는 은사들(특히 방언 말함)은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다. 꽹과리는 마음이 없는 소리를 낸다. 이것은 자기에게는 유익이 될지 모르나 남에게는 유익이 없고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야만이 되게 할뿐이다.
이런 은사들은 생명과 무관하고 어떤 경우에는 중독성을 일으켜서 생명에 무관심하게 함으로써 방해를 한다. 생명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으면 건축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사랑 안에서 유용한 것을 구하라고 권고한다. 유용한 것은 생명의 성장과 건축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신성한 생명으로 연합된 한 백성을 갖는 것이다(계21:3).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졌고 사랑을 따라 장성하여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한 교회, 즉 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담으로 인하여 변질 된 생명을 끝내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얻으신 새 생명을 우리에게 분배하셨다. 이 생명은 사랑 안에서 자라야 하고 건축 되어야 한다. 이 사명을 위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골1:24).”고 하였다. 구속은 새 생명을 위한 과정이고 새 생명은 건축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생명의 유기체로서의 몸 된 교회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이전에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둘이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되라 하셨다. 여기에 하나님의 갈망이 보인다. 타락이 없었다면 생명나무를 통한 길이 있었을 것이다.
생명은 몸이 있어야 표현 되고 연합이 있어야 행하여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선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몸 된 교회를 얻으신 것이다. 하와는 한 생명, 한 몸, 한 교회, 한 백성의 상징으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목표는 생명과 건축이다. 그래서 은사들이 이 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사랑을 따라 구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한 것이다. 예언은 생명과 건축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언은 미래를 예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바울이 제시한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전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고 그를 대신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를 위하여 말하는 것은 기적의 문제가 아니다. 방언 말하는 것이나 능력 행함 같은 것이 아니다. 인격의 문제며 생명성숙의 문제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을 기적적인 능력으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생명의 성숙, 인격의 성숙으로만 가능하다. 방언 말하는 것은 생명의 성숙과 무관하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성숙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기적으로 말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말씀은 인격으로 하는 것이다. 무슨 음성으로 들려주었다는 사람, 꿈에서 보여 주었다는 사람, ....등등이 있고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심한 일이다. 속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지 그 말은 그 자신의 인격에서 나온 것이다. 혹시 하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의 통제 아래서 표현 되는 것이다(요1:17참).
이래서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한다. 사랑은 생명성숙의 표현이다. 생명이 성숙한 자가 사람을 살리고 돌보며 건축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사랑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남을 사랑하고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12장에 열거된 은사들은 인격의 성숙과 무관한 것들이다. 그래서 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유명한 화가의 작업실에 어린아이들이 들어가서 저마다 붓을 들고 설친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다. 성숙한 사람의 합당한 이해와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온전하게 하는 사역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골2:2)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엡3:4)로서 이것은 생명과 건축의 문제다. 이 문제를 이루기 위해서 생명의 성숙인 사랑을 따라 예언하기를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면 사람이 살아난다. 우리는 다 이 말씀하심을 듣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심으로 천지가 창조 되었듯이, 애굽에 종 되었던 백성이 해방을 받고 바로의 영광을 위하여 살던 노예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전을 건축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사망을 생명으로 바꾼다.
누가 이 말씀을 전할 것인가? 방황하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실 때 “내가 누구를 보낼꼬?”라고 하셨고,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였다(사6:8). 이 말씀은 오늘도 내일도 우리를 부르시는 말씀이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을 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음을, 새 생명 안에서 행하게 되었음을, 몸 된 교회 안에 살게 되었음을,.... 옛 하늘과 옛 땅이 떠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이도록 소리를 높여 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