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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그리스도의 부활
본문: 고전15장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고전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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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그리스도의 부활
1. 생명의 부활
고전 15 장
고린도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 되어있다. 제1부, 1:~10장 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생활의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이며, 제 2부,11:~16장 까지는 하나님의 행정을 위한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으로 되어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은 그리스도로 시작 되고 또 그로 말미암는다. 그 안에서 부르심을 받고, 그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새 생명 안에서 산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리스도는 이 삶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교회로 건축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집 하나님이다(벧엘 창31:13). 그는 사람과 함께하는 집에 거하시기를 원하신다. 이 집은 하나님의 거처로서 그의 백성이다.
계시의 완성은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백성이 있는 하나님이 되고 사람은 하나님이 있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은사들로 인하여 분열 되고 소란한 고린도 교회는 본질이 아닌 것들로 빗나가고 있었다.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은 은사들이 아니라 생명과 건축이다. 즉,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로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으로서 생명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공급함으로서 본질에서 빗나간 사람들을 교정하려 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이 신성한 연합으로 하나 되게 하는 중보요 생명이다.
12~14장까지에서 은사들에 대하여 말 할 때 사랑을 따라 구하되 그 중에서는 특별히(가능하면) 예언(하나님을 위해 말함)을 하려고 하라한 다음 15장에서는 부활을 언급한다. 예언은 건축에 도움이 되며, 그 건축은 부활 안에서 이루지기 때문이다.
세상도 건축이다. 바벨은 어떤 모양이었던지 거역 안에서 이루어진 건축이다. 하나님은 이 거역의 산물인 바벨 안에 거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거역의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얻으시려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거역 안에서는 백약이 무효였다. 교정하려 하면 할수록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또 다른 길로 빗나갔다. 그래서 새 언약으로 “내 법을 저희 속에 두겠다.” (성육신) 약속하셨고(렘31:31,32) 예수께서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요1:14). 예수의 성육신은 예레미야로 주신 약속의 성취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된다면 거역은 없을 것이며 인간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거처로 건축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예수처럼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다시 빗나가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사람은 이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를 참람한 사기꾼으로 몰아 죽였으며, 기독교는 예수를 존경한다고 신격화 시켜 다시 하나님에게 반납하고 숭배하게 된 것이다. 두 편 다 선악과를 먹은 지식을 믿고 성육신을 믿지 못한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어떻게 성육신하게 되셨는지 말이 없다. 예레미야는 내 법을 저희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 하리라고(렘31;33) 하였으나 역시 어떻게 기록하는 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요한 또한 태초에 계신 말씀, 하나님과 함께하는 말씀,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고 하였으나 어떻게 인간 육체가 되셨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요한은 단지 말씀이 육체가 되신 분을 소개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속을 얻었다고 전했으며 우리는 그들의 증언을 듣고 그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
그런데 사죄의 제사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에 있는 속죄소 에 뿌리면 여호와는 응답하시고 백성을 위한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은 백성의 죄를 사하시면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속죄소에서 나왔다. 속죄소는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성육신 하신 예수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 즉 거역을 대신한 제물로 바쳐젔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류를 위한 속죄소가 되었고, 그 속죄소에서 자신의 피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성육신을 다시 증명한 것이다.(히9:12,10:10~15참),
하나님을 만나면 말씀을 받는다. 모세는 산에서 여호와를 만나고 그의 말씀을 가져와서 백성에게 전했고, 대 제사장은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한다. 이보다 더 예수는 십자가에서 자기피를 드림으로 말씀이 되셨고, 사도들은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였음으로 우리가 듣고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은 것이다(엡1:7).
백성들이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오는 대제사장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의 목격자들인 사도들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네 죄 사함을 얻었다”는 말씀을 들은 것이다.
우리는 성육신하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았고 그가 죄 없으심을 보았다. 진실이었다. 은혜와 진실이 충만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한 태초에 계신 말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하나님이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요한은 제물 되신 예수님에게서 그 말씀을 보고 듣고 만졌던 것이다. 어디서 보았던가? 그 진실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보았으며, 대 제사장으로서 지성소 속죄소에서 들었을 것이고, 교회를 통하여 만저 보고 우리에게 전한 것이다. 그리고 본 바요 들은 바요 주목하고 만진 바라 하였다(1요1;1).
이것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의 결과였다. 십자가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보혜사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된 것이다. 이 증언으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사는 희랍세계에서 교회는 시작 되었다.
교회는 부활의 증거로 건축 된다. 구속만으로는 건축 되지 못한다.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보지 못했다면 구속-속죄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속죄를 알게 된 것은 부활을 보았기 때문이며, 부활을 보았기 때문에 그 증거로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지성소에서 나온 대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이 죄를 사했는지를 알 수 있었겠는가? 백성들은 죄를 사해주셨다는 말을 듣고 그 죄 사함 안에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증거를 듣고 주 예수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교회로 건축 된 것이다. 이 말씀은 부활 안에서 전해졌고 그 안에서 들은 것이다. 교회는 부활 안에서 시작 되며, 건축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믿음과 교회에 관계 된 모든 것이 모호해지고 쓸모없어진다는 것이다. 부활은 비밀스럽다. 사람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만유를 보고 창조를 시인한다. 그러나 그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창조자 자신만 아는 일인 것이다. 이와 같이 부활도 그 결과를 보고 믿게 된다. 그러나 창조와 같이 부활도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살리신이만 아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속의 결과로 변화 된 사도들과 그들의 전파로 일어난 새로운 삶과 교회다. 구속이 없으면 옛것이 끝나지 않으며, 부활이 없다면 새로운 삶이 일어날 수 없고, 새로운 삶이 없다면 교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세계, 교회를 창조하고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