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그리스도의 부활(2)
본문: 고전15:20-28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
말씀 요약
유일한 길
그리스도의 부활
2. 더 온전한 창조(새 창조)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했다. 그가 보시고 심히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마귀가 침입함으로 잠시 그 창조의 경륜에 손상이 왔다.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형상으로 창조 된 사람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 그 거룩한 경륜에서 빗나간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바벨을 건설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사람 중에서 순종하는 자들을 택하여 언약을 세웠고 그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어 나라를 이루게 하셨으나 그들의 본성상 그 법을 지킬 수 없어서 불순종과 거역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법은 옳고도 완전했지만 그 법이 그들의 생명이 아니었음으로 하나님의 경륜보다 자신들의 안일과 영광을 추구하다다 더 큰 바벨에게 나라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새로운 생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내 법을 저희 속에 기록 하겠다”(렘31:31,32)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의 성취자로서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참람하다고 죽였으며, 이방인들은 어리석다고 버린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하여, 이방인들은 인간을 존중하기 위하여 예수를 죽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려 새 생명의 주가 되게 하셨다. 새 창조를 시작하신 것이다.
아담은 옛 생명의 주(창시자)로 지음 받았으나 빗나감으로 사망의 주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죽고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의 주가 되신 것이다. 사망은 아담으로 말미암았으나 생명은 예수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른 종교에도 부활신앙이나 사상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의 소망과 생각의 산물일 뿐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한 이 부활은 선지자들로 예언 되었고(사53:,단9:26,슥13:7) 역사적으로 성취 된 사실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 줄로서 교회를 발생시킨 실재적인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경륜 안에서 잃었던 동산을 회복하기 위하여 구속과 부활을 통하여 교회를 발생시키셨다. 구속은 옛것을 끝내고 새것을 세우기 위한 것이며 부활은 새 생명 안에서 교회를 발생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목표는 인간의 거역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그의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은 반드시 실현 되어야 한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재창조가 필요하다. 창세기 1:1절에 보여진 창조는 마귀가 큰물로 땅을 덮음으로서 깊은 어둠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빛으로부터의 창조를 시작하여 물에 덮인 땅을 회복하고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지으셨다. 그런데 다시 마귀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여 바벨을 건설하게 하였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유린 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순종하는 자를 불러 의롭다 하시고 언약을 세우셨으며. 또 바로에게 노예 된 그 자손들을 구원하여 나라를 세워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먹은 선악과가 육체 안에 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마저 왜곡시키고 의식과 형식에 빠짐으로 또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선악과를 먹고 그 속 깊은 곳까지 거역으로 젖어있는 인간은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 법을 저희 속에 기록하기라”(렘3132,3)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 중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인간 육체 속에 기록 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백년 후에 한 사람 예수 안에서 이 약속이 성취 되었다는 것이다(요1:14) 이것의 복음이다.
예법에 따르면 겨울(죽음)을 거치고 나온 첫 열매의 한단을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도록 되어 있었고, 50일 후에는 모든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바로 그 약속의 첫 열매라고 우리에게 전파했다. 첫 열매가 드려지면 다음 모든 열매도 거두어진다는 것이다.
첫 열매가 거두어졌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이 성육신 되었다. 한 사람에게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에게도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복음이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가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죄와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다면 의와 생명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롬5:12~19참).
우리 모든 사람이 언제 선악과를 먹었던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는 선악을 아는 지식이 육체 속에 깊이 박혀있다. 그 어떤 힘으로도 분리 제거할 수 없도록 생명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담 한 사람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 한 사람이 생명과를 먹었다면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과를 먹고 뼈 속까지 박힐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떻게 생명과를 먹었는가? 아담은 마귀의 유혹을 따라서 먹었고,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먹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생명과를 먹기 위하여 십자가로 가신 것이다.
십자가에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조롱 받으시고 하나님에게는 옛사람-죄인의 대표자로서 심판을 받으셨다. 그래서 모든 이름을 벗은 인간 본연의 원위치, 그 완전한 위치에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를 회복하신 것이다. 생명과를 먹은 것이다. 예레미야로 약속하신 말씀(그 법)은 이 사람 속에 주어졌다. 하나님의 법-말씀은 이런 사람 속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그는 구속의 주(창시자)가 되셨다. 그러므로 빗나간 인간은 누구나 이 사람 안에서 구속 되고 하나님의 동산으로 회복 된다. 동산에는 생명나무 열매가 있다(계2:7). 누구나 먹을 수 있다. 임의로 먹으라 하였다. 예수는 자신의 구속 안에서 인간을 구속하여 원위치로 회복하시고 생명과를 먹게 하신다.
구속은 원위치로 회복시킨다. 사도들은 십자가에서 모든 이름이 다 벗겨진 예수를 보고 자신들의 모든 것이 다 끝났던 것이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며 자신들을 살게 한 유일한 이유였던 생명이신 주님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 끝이 나버린 사도들에게 다시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이다. 구운 생선을 주시면서 먹으라 하셨다. 새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었다. 그들은 주님이 주신 떡과 물고기를 먹고(요21:13,눅24:30,31,) 눈이 열려 주님인 줄 알아보았다. 그들에게 부활은 이렇게 다가 왔고 새 생명은 물고기와 함께 그들 속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40일 동안 함께 있었으며 승천하신 것을 보았던 것이다. 또 오순절 날이 되어 함께 모였다가 하늘로부터 불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모두 알아듣지 못한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는데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 다 자기 방언으로 알아듣더라는 것이다(행2:1~).
부활은 우리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 날 이후 큰 변화 안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럴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하여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각처에 교회가 발생한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사는 희랍세계에 한 몸인 교회가 발생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를 위해서 제자들을 찾아왔던 것이다. 인간의 영생불사를 위한 소망의 실현이 아니다. 하나님 경륜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주님은 단번에 구속을 이루신고(히10:10) 새 창조를 위하여 부활하셨다. 구속은 단번에 이루어졌지마는 부활은 교회와 함께 재창조가 완성 될 때까지 계속 된다(계20:5,6참).
바울은 부활의 능력을 알려고 날마다 죽는다고 하였다(15:31). 그렇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첫 열매) 안에서 날마다 죽고 다시 살면서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새 창조를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