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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그리스도의 부활(3)
본문: 고전15:20-28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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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그리스도의 부활
3. 몸의 부활 (15:35~38)
인간의 부활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소원은 몸의 부활이다. 중국인들은 몸이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 몸은 죽으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활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육신의 장생을 기대하고 있으며, 희랍인들은 육체는 약하고 불완전하며 악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없어질 것이나 영혼은 불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으며, 유대인들은 현재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기 때문에 부활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일부는 있지만). 그러나 인간이 영원히 살고 싶은 본능적 소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시작되었기 때문에 부활은 당연한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있었고 있다면 또 어떠한 모양으로 부활하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부활은 비밀스러운 문제인 만큼 지금까지도 일치 된 결론이 없는 실정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에 그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문제와 더불어 부활의 문제도 있었는데 바울의 목표는 오로지 교회건축에 있었기 때문에 건축에 유익이 되는 은사(사랑과 예언) 다음에 부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부활은 교회건축으로 시작해서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 되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 문제다. 부활은 교회를 발생시키는 생명이며 건축하게 하는 새로운 판이고 새 예루살렘의 바닥이 되는 정금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 부활이 전파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의 문제다.
그런데 교회가 있으려면 인간의 몸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장생불사의 꿈 때문에 육체의 부활에 관심하지마는 바울은 교회건축을 위한 절대적 요소로서의 육체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교회는 육체가 있는 인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의 부활은 인간의 장생을 위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의 문제다. 몸이 없다면 교회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교회-하나님의 나라는 희랍인들이 생각하는 불멸하는 영혼들로 세워지지 않으며, 중국인들이 소망하는 신선들로 세워지지도 않고, 인도인들이 말하는 초월적 존재로도 세워지지도 않으며, 유대인들이 바라는 현실적 요구로 세워지지도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되고 부활한 사람으로 세워진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먼저 구속되심으로 그 안에 포함 된 모든 사람의 구속이 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모든 사람의 부활이 되셨다. 그는 우리의 대표자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또 부활하셨다.
아담이 우리 대표자였을 때 우리 모두가 죄인 되었듯이 그리스도가 우리 대표자 되심으로 우리 모두는 의인 되었고, 그가 죽으셨을 때 우리 모두가 죽었으며 그가 살아나셨을 때 우리 모두가 새 생명 안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분의 구속과 부활 안에서 구속 받고 부활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단번에 구속을 받고 위치를 옮겼으며, 부활하여 새 생명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구속 받은 사람은 단번에 원위치로 회복 되지만 부활한 사람(새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은 그 안에서 날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몸(교회)으로 자라는 것이다(엡4:13참).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구속 받고 부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륜의 완성인 새 예루살렘, 즉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백성이다.
몸이란 생명의 유기적 관계를 말하고 백성이란 통치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몸이며 백성이다. 몸과 백성은 모두 육체가 있는 인간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셨으며 부활하게 하셨다.
여기서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느냐”라는 문제가 제기 된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의문의 핵심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자들에게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씨가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나며, 다시 날 때는 누가 각각 다른 그 형체를 주시느냐?......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고 한다.
이 말씀에서 식물의 비유는 매우 그럴듯하지만 꼬집어 따진다면 역시 문제가 없는 바는 아니고 또 아직은 아무도 부활한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인간에게 식물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의문과, 식물은 그 생명의 연속성이 있지만 인간의 경우는 다르지 않느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유지 실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유는 언어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부득이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한다.”고는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다고 매듭을 지은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한다는 것만 알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어떻게 창조 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창조를 할 수 없고 어떻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시켰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부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시는 일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 인간의 위치요 분수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경륜은 부활로 이루어지고 완성 된다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일 뿐 아직 생명이 없었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마귀가 준 지식이 있을 뿐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 즉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는 참 생명, 즉 부활생명이 없다.
교회는 참 생명, 즉 새 생명으로 건축 된다. 아담은 지식-생명으로 바벨을 건설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로 시작 된 새 생명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그 나라를 이룬다. 이 건축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새 생명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였다(레23:10참).
첫 열매는 새 생명이며 새 생명들을 위한 약속이다. 첫 열매 한단이 여호와 앞에 드려지면 50일 후에는 모든 열매가 다 익어 추수하게 된다. 교회는 첫 열매이신 예수가 여호와 앞에 드려진 50일 만인 오순절 날에 발생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셨으며 오순절에 교회가 발생하였다. 이것을 어찌 우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요19:14참)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40일 동안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모였던 제자들을 통하여 교회가 발생한 것이다. 40일 동안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무엇을 주고 가셨던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결과는 교회였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의 부활은 교회로 전가 되어 확장 되었다.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가 되었듯이 예수의 부활은 그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가 되고 확장 되어 교회로 건축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이고 그 증거다.
흙으로 지어진 인생, 더구나 마귀에게 유린되어 바벨을 건설하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되어 자기위치로 돌아오고 부활생명을 얻어 교회로 건축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 한데까지 자라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 축복인가!
몸의 부활은 교회를 위한 문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지체들이 한 몸이 되는 생명유기체로서의 교회는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서 신랑과 신부, 하나님과 그 백성의 형태로 나타날 한 나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