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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교회생활의 실재적인 문제들(2)
본문: 고전16:4-24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16:2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16: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16: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16: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16: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16: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16: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16:9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16: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16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16: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6: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16: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16: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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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유일한 길
교회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들(2)
고전16:4~24
교회생활의 실재적인 문제로서 헌금문제를 언급하고 다음은 자신의 소원과 교회의 사정을 통하여 일상적인 생활을 언급함으로써 교회를 언급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삶이다. 우리는 이 일상에서 그리스도를 표현함으로써 아담을 머리로 하는 세상 위에 존재해야 한다.
함께 머물기를 바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주 오면 소원해진다는 말이 있다. 친한 사람도 자주 오면 짐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옛날에 손님맞이하기가 어려운 때에 있었던 일이겠지만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는 친구 집도 자주 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지나는 길에 잠시 보고 가기를 원치 않고 함께 머물면서 더 깊이 교통하기를 원한 것이다. 우리들의 경험으로 볼 때 주안에 있는 형제들은 서로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 안에 있을 때와 또 하나 다른 점이었다.
디모데를 부탁함
디모데를 보내면서 그가 두려움이 없이 있다가 돌아오게 하라고 하였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렸고 고린도교회의 중진들은 나이 많고 유식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노련한 사람들이 젊은 사람의 말을 듣기가 어려우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이것을 강조하면서 그도 나와 함께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주님을 대신함에는 나이에 상관이 없다. 주님의 일은 부활 안에 있는 일이다. 부활 안에서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고 하였다(막12:25참). 주님의 일에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영광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직무에 있다. 인생은 그 정해진 직무로 인하여 피조물 중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표현, 대리자, 종, 동역자, 배필, 신부, 백성,.... 이 모두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우리가 모두 한줌의 흙이 아닌가! 숨이 코에 있지 않은가! 그러나 주님 안에서 우리의 위치, 우리의 직무는 영광스럽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심히 좋다 하셨다.
디모데는 나이 어리지만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부활 생명의 일이며, 주님이 죽으시고 다시 얻은 생명의 일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이다. 누가 이 임무를 소홀히 여기며 무시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신성한 직임을 맡은 자들을 존중하고 힘써 도와야 한다. 그들을 존경하고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다.
땅 따로, 하늘 따로 떨어진 세상에서 교회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안에서 통일 되는 곳이다(엡1:10). 직임은 하늘에 속한 것이며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은 땅에 있다.
그러므로 행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고사가 있다(민12:1~참). 그는 누이였으나 모세는 하늘에 속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볼로와의 관계
아볼로에게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것을 권했으나 지금은 가지 않겠다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갈 것이라고 했다. 디모데는 아들 같이 여기는 청년이었으나 아볼로는 동역자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불로는 알랙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학문에 능하고 말씀에 유력함으로 고린도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바울은 나는 심었으며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 하였으나 고린도 교회는 “나는 게바에게,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 하면서 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다 하나로 여겼으나 고린도 교회는 자기들의 지식과 취향에 따라서 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단의 목표는 분열이다. 선악을 아는 지식과 취향의 다름을 이용하여 어찌하든지 건축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하나됨의 길
카톨릭은 제도로 분열을 막으려 하며, 개신교는 교리로 연합을 이루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무엇으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세우시며 지키시는가? 그는 제도를 세우지도 않으셨으며 교리를 밝혀 놓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왜 주님이 주지 않으신 것으로 하나를 지키려 하는가?
여호와께서는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하와를 지으시고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 하셨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와 살을 주시고 하나가 되라 하시지 않았는가?
사단은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가 되라 하고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고린도 교회는 지식으로 분열 되었다. 오늘날의 교회도 지식으로 분열된 것이다. 카톨릭이 제도로 하나를 지키려 하자 개신교는 교리를 내세워 분열하였다. 제도와 교리는 다 지식의 산물인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제도와 같이 보이고 교리로 조성된 것 같지만 생명의 무궁한 능력을 따라 된 것이다. 사람의 몸을 보라. 얼마나 완전한 조직이며 통제인가? 그렇다고 몸을 조직하고 통제하여 만들 수 있는가? 미물에 속한 생명이라도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생명의 신비로 만들어져 있거든 하물며 그리스도의 몸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회는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나는 사십년간 교회가 살아있는 몸이라는 것을 보아왔다. 신비한 일이다. 제도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만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살아서 숨 쉬고 움직이고 활동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를 제대로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느낌은 조직도 제도도 없는데 한 몸처럼 흐른다는 것이다. 나도 신비하게 느끼면서 시간 가는 줄을 잊어버리고 사십 년을 살아왔다. 생명이 있으면 하나 된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 이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