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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린도후서 서언(3)
본문: 고후1:1-2:1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고후 1장>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10.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11.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12.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15.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17.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18.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23.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후 2장>
1.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2.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3.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줄 확신함이로라
4.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찌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9.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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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
고린도후서 서언(3)
1:1~2:11
1. 위로와 격려
3) 하나님의 은혜로 위로함
고린도전서는 복잡성으로 인하여 일어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하여 쓴 편지다. 분열은 복잡성으로부터 일어나고 그 복잡성은 아담이 사단으로부터 받은 지식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복잡하게 보이는 만물을 단순하게 지으셨다.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산 혼이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단순한가! 그런데 왜 이리 복잡하게 되었는가?
사단이 허황한 지식을 줌으로써 된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 자체가 복잡성의 함정인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이 복잡한 인간들의 선동과 동조로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이런 혼란이 교회에서 발생하면 모두가 상처를 입게 된다. 주장이 있으면 편이 갈라지고, 피차 대항하기 때문에 서로서로 상처를 입는 것이다. 교회는 모두 회개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지만 상처투성이 안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있었다. 고린도교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다.
바울은 자신도 살 소망까지 끊어진 줄 알았던 상황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주님으로 위로를 받은 사람으로서 고린도교회를 위로하려고 두 번째 편지를 쓰게 되었다. 위로를 받은 사람이 위로하는 것이다.
12절에서 그는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단순, 단일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의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하였다.
거룩함이라고 번역된 희랍어 ‘apolotes’는 단일함, 단순함, 관용,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사단의 말을 듣고 따라간 사람은 복잡해졌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그 지으신 이 앞에 서면 단순해진다.
바울 일행은 죽음의 상황 앞에서 단순하신 주님을 만났고 그의 단순하심으로 위로를 받고 단순해졌다. 사단에게서 보고들은 지식과 그 경험이 모두 무너지는 자리에 오면 단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인생은 단순해진다. 인생의 원위치 즉 예수 안으로 돌아오면 인생은 단순하다는 것이다. 이 단순함은 사단으로 말미암았던 모든 복잡성을 일소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단순하심과 진실함으로 했다고 했다. 하나님은 단순하시다. 또한 단순하시기 때문에 인생에 대하여 관대하시다. 그가 만일 복잡해서 꼼꼼히 따진다면 그의 마음에 맞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다 정죄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사단은 지식으로 복잡하게 하여 혼란을 일으켜 놓고 사람을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 아래 두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문제는 단순하다.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지으시고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대신하게 하려는 것뿐이다. 복잡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으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니까 복잡해진 것이다. 분수에 맞으면 단순하지만 분수에서 벗어나면 복잡해지는 것이다.
바울은 죽음의 상황에서 단순하신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 고린도교회는 복잡한 사람들로 인하여 혼란스럽게 되었지만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고 그 몸인 교회 또한 하나다. 복잡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와 그 몸을 제시함으로써 복잡함을 일소 시키고 교회를 평정 시킨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 아주 복잡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25세가 되어서야 하나님 앞에서 내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막다른 길에서 부르심에 응했었다. 목회를 하면서 여유가 생기니까 또 다시 복잡해졌다. 결국 벼랑 끝에 가서야 다시 단순해졌고 그때 또 다시 하나님은 모 선교기관에 들어가서 일하도록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복잡성의 본성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다급하고 갈 길이 막히면 단순해졌다가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면 또 다시 복잡해지곤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날이 왔다. 충주에서 학생사역을 하다가 다시 사역의 절망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힘써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데도 듣는 자들이 도무지 반응이 없어서 시체에게 침을 놓은 격이었다. 절망적이었다.
하나님은 이때 또 다시 구원의 손길을 펴 주시고 한 사람의 신실한 주의 종을 만나게 하셨다. “주의 형상을 닮아”라는 책을 통해서 웟치만니를 만나게 하셨고, 그 안에서 하나님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한 사람을 아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나는 단순한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뒤에도 무슨 일을 하려면 복잡성이 잠간씩 나오곤 했지만 쉽게 돌아설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안으로 사라지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내 인생과 사역은 그날 이후 단순한 길, 가장 쉬운 길로 몰입했는데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보고 사람이 아주 쉽다고 한다. 나는 쉽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단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쉬운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단순하시고 예수님은 단순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그 단순하심으로써 우리를 대하신다. 큰 은혜다.
예수님의 생애처럼 단순한 생애가 없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려면 단순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는 고백을 들으신 분으로서 단순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가 하신 마지막 말 한마디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였다. 단순하고 단일하신 분이었다.
단순하면 진실하고 진실하면 관대하다. 복잡한 사람은 진실할 수가 없음으로 관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주님의 진실하심은 그의 단순하심의 결과이고, 그의 관대하심은 그의 단순하심의 표현이다.
바울은 그의 단순함-관대함으로 고린도교회를 용서하고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죽음의 상황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주님으로 위로를 받은 바울은 죽은 자 같이 된 고린도교회 형제들을 위로하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새 언약으로 소망과 격려를 하려고 이 편지를 썼던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괘씸하겠는가? 자기를 배척하려고 선동한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겠는가? 복잡한 사람으로서는 위로할 수도 없고 격려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단순해졌음으로 그들을 위로하는 사도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사도에게 위임하신 명령은 단순하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구속자 되시고 새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라는 것이다. 교회가 어떻게 했던지 위임을 맡은 자의 할 일은 단순하게 교회를 살리고 모두를 위로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언제 뜰지 언제 앉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람은 자기의 길을 가고 단순한 사람은 주님을 따른다. 아브라함은 복잡했을 때는 이스마엘을 낳았고 단순해졌을 때는 이삭을 얻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단순해진다. 그분은 단일하시고 단순한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복잡한 사람들이 복잡하게 여기는 하나님을 단순하게 나타내신 분이다. 예수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은 단순한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이 얼마나 단순한가!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단지 나의 생명의 근원이신 분, 자신의 생명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 앞에 왔던 사람들은 다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단순하심으로 복잡한 문제들은 근원적으로 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주님 앞에 가면 모든 문제는 소멸된다. 그가 단순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자신이 단순한 사람이어야 하고 단순해야 복잡한 사람의 문제를 소멸 시키며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은 겹겹이 문제로 싸여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의 껍데기를 벗기려고 한다. 그러나 주 예수님 앞에 오면 저절로 문제들이 사라지고 원위치로 구속되는 것이다.
단순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지음 받았고, 단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구속 받았음을 감사하고 찬양하자. 전파하자. 그래서 복잡한 인생들을 원위치로 돌리고 문제들을 소멸 시켜 온 세상을 조용하고 단순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