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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새 언약 사역(2)
본문: 고후2:17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2.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17.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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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
새 언약의 사역(고후2:12~17)
2. 순전함(17)
장군의 개선행렬은 복잡하고 웅장한 것 같으나 단순하다. 모든 것이 다 장군의 개선을 돋보이게 하여 축하하는 것으로서 한마디로 히어로 트리움패라 (영웅의 승리)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개선장군이신 그리스도의 개선행렬도 단순하다. 그러므로 이 개선 행렬에서 전하는 말씀 역시 단순하고 순수한 것이다. 섞을 것이 없다. 존재로는 향기가 되고 말씀으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외치는 것이다.
정복 되고 사로잡히고 종이 됨으로 승리의 향기가 되고 간증함으로 그리스도의 승리가 전파 된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앞에서 말한다고(17) 하였다. 혼잡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것을 섞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섞지 않았다는 것인가? 죽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단순하고도 유일한 복음에 유대인들은 율법과 전통을, 희랍인들은 철학과 문화와 도덕을, 또 다른 이방인들은 우상과 미신숭배 같은 것들을 섞은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서 오해 받고 배척받았던 것처럼 그의 복음 역시 인간문화 속에서 섞이고 변질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 전래 된 기독교 역시 이미 이런 환경을 지나서 서구화 된 상태로 들어왔는데 거기에다 민족의 전래 신앙이었던 기복신앙과 성리학의 영향을 깊이 받아서 기복적인 신앙과 근본주의적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섞인 것으로서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장군의 개선행렬이 단순한 것처럼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복음도 승리의 행렬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순수한 것이다. 승리 안에는 죽음과 삶이 갈라질 뿐이다.
예수는 이겼다. 우주적 전쟁에서 마귀를 이겼다. 속인 자를 폭로하고 마귀에게 포로 되었던 인류를 원 위치로 회복시키고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였다. 마치 애굽에 억류 되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것 같이, 고래스왕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왕이 됨으로 느브갓네살에게 잡혀갔던 자들이 풀려나서 돌아온 것 같이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심으로 그에게 속아서 포로 되었던 자들이 구속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 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전파하려고 일생을 바쳤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도 단순히 율법에 사로잡힌 자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마귀의 속임수에 따라서 유대종교와 그들의 전통과 문화에 억류 된 자였던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 동산을 떠났던 아담은 하나님 같이 되기는커녕 저주 받은 땅에서 가시덤불과 일생을 싸우고 있는 것이다(창3장 참조).
땅은 인간에게 주어진 제일기업으로서 인간 자신과 같고 가시덤불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소득과 같다 할 수 있다. 저주 받은 땅에서 생산 되는 것, 즉 인간이 생산하는 종교 정신문화적인 모든 것이 참 인간의 길을 가로막는 장에 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사는 인간은 앞도 뒤도 없고 장래도 소망도 없기 때문에 복잡하기만 하고 답이 없는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다. 답이 없으면 복잡해진다. 인류는 이 상황을 개선시켜 바꿔보려고 힘을 다하고 있지만 그 답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길은 하나뿐이다. 인류의 문제는 속은 데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속은 사람은 속인 자를 이기신 그리스도 앞에 가면 된다. 그에게 굴복하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제사장이 된다. 답이 없는 곳에서 더 이상 방황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생각을 붙들고 하나님을 시인하지 못하고 굴복하지 못했을 때 갈수록 답이 모호 해 졌으나 그를 시인하고 굴복한 후에 날이 갈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답이 명백해졌음을 간증할 수 있다. 지금도 명백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지금은 다소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할지라도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로 마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단순한 복음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고도 십자가에 다려 죽임을 당하셨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으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하나님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 같음”을 기대했던 그 모든 것들은 그의 죽으심으로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게서 그 전의 모습과 모든 가능성은 흔 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단순하다.
누가 이 사람을 보고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할 수 있으며, 바람과 바다를 순종하게 했다고 할 수 있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였다고 할 수 있으며,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 사람 예수를 전하는 일은 단순한 것이다. 그가 아담-인류가 기대하던 하나님 같은 사람이었지만 죽으니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도들은 다시 고기 잡으러 가면서 이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같은” 이 사람이 죽음으로써 마귀가 했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서 하나님에게 붙잡힌 것이다. 개선장군의 개선행렬에 붙들려 끌려오는 포로처럼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날을 위행서 전시 되게 된 것이다.(계19:20,21, 20:10,14.참)
예수는 죽으심으로 승리하셨다.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마귀를 이기고 그를 하나님께 전리품으로 드리셨다. 이 사실을 보고 예수의 승리를 자신을 위한 승리로 받아드린 사람은 예수와 하나 되어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의 죽으심은 여호와께서 “네가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같이 된다던 마귀는 패망하고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은 승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 죽음을 받으시고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신 것이다.
새 생명을 가져옴
이 승리는 새 생명을 가져왔다. 승리는 생명이다. 죽고 다시 살았음으로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마귀에게 진 것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창2:17,계3:1참). 반대로 마귀를 이긴 것은 죽었으나 산 것이다. 마귀를 이긴 날부터 육체(창6:3)로는 죽었으나 사람으로서는 산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어있었다. 그러나 살아서 말씀하신 것이다. “나를 보라 마귀의 말이 거짓이 아니냐? 속지 말라. 하나님 같이 된 자가 어디 있느냐? 사람은 사람의 위치에 있으면 승리자로서산 것이고 위치를 떠나면 패배자로서 죽은 것이다. “
마귀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조종하여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주로 다시 보내 주셨다. 예수는 살아나신 후에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오백여 형제들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바울에게 보이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보이신 것이다. 그는 승리자로 살아계신다. 죽고 다시 살았음으로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아무것도 섞을 것이 없는 것이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죽임 당하셨으나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 복음은 죽임 당했으나 다시 사신 분을 전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은 철학이나 종교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문제다. 죽으심은 구약의 원 계약, 즉 “네가 정영 죽으리라”는 말씀의 종결이고, 다시 사심은 새 언약, 즉 “내 법을 저희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리라“는 새 약속의 출발이다.
구약은 정영 죽으리라 로 시작해서 예수의 죽으심으로 종결 되었고, 신약은 다시 사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사람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 된다.
그러므로 복음은 죽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 자신이고 새 언약의 사역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사람들의 간증이다. 단순하고 순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