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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새 언약 사역자들(2)
본문: 고후 3:6-1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6.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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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자들
2. 영광의 사역
고후3장
1) 새로운 언약
새 언약이란 옛 언약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희랍어에서 네오(neo)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이지만 카이노스(kainos)란 질적으로 새롭다는 뜻이다. 새 언약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짐으로써 새로운 관계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처음부터 온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오심으로써 점차적으로 새로워지고 온전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의 습성은 오래 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을 쉽게 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발은 오래 신을수록 편하고 좋지만 낡아지면 다시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온전하지 못한 것은 온전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왜 온전한 것이 왔는데도 바꾸지 못했는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건 때문이라고 했다.
이 수건은 모세가 율법서를 낭독할 때 빛이 났던 얼굴을 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가렸던 것인데 이제는 그 수건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어서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없어질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가렸는데 유대인들은 없어질 것을 너무 귀중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이상을 보지 않으려고 마음눈을 가려버렸다는 것이다. 신발을 살 때 너무 귀한 것을 샀기 때문에 닳아지고 망가져서 밑창이 터졌지만 이것 이외에는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새 신발 사기를 거부한 셈이다.
그러나 이제 이 수건을 벗고 주께로 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영광을 보게 된다. 또한 이 영광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으로서 바라보는 자로 하여금 영광스럽게 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2) 영광이 뛰어난 언약
바울은 모세가 자기 얼굴에 수건을 가린 것은 없어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이것은 신약사역을 통하여 구약 사역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모세 당시에는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신약 사역을 경험하고 보니까 그것은 더 영광스러운 것이 올 때 사라질 것이었다는 것이다.
가로등이 어둠을 밝게 비췬다.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비춰준다. 그러나 해가 뜨면 그 빛은 없는 것처럼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그 빛을 꺼버리는 것이다. 율법은 밤과 같은 때에 분명히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밝은 해가 떠오를 때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또한 구약은 모세 한 사람의 얼굴에 잠시 빛이 있었지만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이 그를 바라보고 그와 같이 되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사역은 소망이 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이 아니며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을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있을 것이다. 또한 율법을 전하는 자는 갈수록 힘이 없어짐으로 절망적이다. 자신이 먼저 정죄아래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언약의 사역, 즉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역은 하면 할수록 소망이 일어나고 담대함이 생긴다. 반대나 난관이 올수록 더욱 그렇다. 뛰어난 사역이다.
3) 영의 사역
영의 사역은 생명의 사역이며 생명주는 사역이다. 그러나 생명의 사역이라 하지 않고 영의 사역이라 한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리스도는 과정을 거쳐 부활하고 승천하여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 그 영이고 그 영은 우리 생명이 되신 것이다.
우리 생명, 즉 새 생명의 근원은 그 영이다. 영이 없는 것은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사역은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의 온전하고 영광스러운 그 영의 사역이다.
4) 의의 사역
의의 사역은 정죄의 사역과 대조된다. 율법은 좋은 뜻으로 왔으나 결과적으로는 정죄를 위한 것이 되었다. 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로 새 언약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지 않고 정죄 없이 아들의 죽음 안에서 모든 사람을 끝내고 새 생명을 주는 것이다(롬5:17,21참) . 그러므로 새 언약은 인류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의에서 온 것으로서 의의 사역인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살리려고 하시는 그분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신도 의로운 자가 되고 그의 사역은 의의 사역이 되는 것이다.
5) 자유의 사역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 하였다. 주의 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다. 과정을 거침으로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신 그리스도의 영이다. 탄생과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을 거쳐 승리하신 그 영은 자유의 영이다. 전쟁으로부터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자유하고 남에게는 자유를 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벗고 승리하신 자유자에게로 오면 자유를 얻고 그와 함께 자유하는 것이다. 주의 영은 주님 자신이다.
스스로 얼굴을 가린 모세와 함께 있다가 우리도 모두 다 얼굴에 수건을 쓰고 있었지만 수건이 벗겨진 주님을 수건을 벗은 얼굴로 보면 그 영광이 맑고 밝게 보일 것이며 그 빛을 반사하게 되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러 주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게 될 것이다. 주를 사모하고 바라보는 자는 주의 영광을 반사한다.
자유는 주님을 사모하는 자가 주님만을 섬길 수 있는 자유다. 인생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나 사단이 깔아놓은 가시덤불에 걸려서 섬기는 자유를 빼앗기고 일생을 헛된 자유를 찾느라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인류사는 정치, 경제, 사상 등의 모든 자유를 되찾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래서 많은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섬기는 자유가 없기 때문에 헛된 것을 열심히 섬기고 있는 것이다. 승리하신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 자유가 있고 자유의 사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