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새 언약 사역자들(4)
본문: 고후 3:6-1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6.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
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자들(4)
2. 영광의 사역
7) 주의 형상으로 화함
개선장군이신 그리스도께 포로 됨으로 시작 된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 향을 뿌리는 자로, 그 자신을 알리는 편지로, 그리고 주의 영광을 반사하는 거울로 사역함으로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러 주의 형상으로 화하게 된다.
인간을 주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으신 것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주의 영을 인격적으로 나타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같이 되려고 자신의 위임을 이탈하여 속이는 자의 영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담이 버린 이 위임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을 인격적으로 나타내심으로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새 언약은 이분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분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인간의 목표가 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 된 존재다. 그러나 아담의 이탈로 인하여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사람들 중에 특별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고 그의 사역은 이탈한 인간을 구속하여 원래의 위치로 회복시키고 창조의 목표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지신 모든 선한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인간의 모든 것을 끝내신 것이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도록 모든 것을 일소시키시고 새사람의 첫 열매로서 부활하여 우리에게 다시 오신 것이다.
이 사람이 “우리 형상을 따라서....”로 시작한 사람으로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형상을 비춰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먼저 하나님 같이 되려 하는 모든 인류를 자신의 죽음으로 구속하여 원위치로 회복시키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 영광을 비춰내셨다.
우리는 이 사람 안에서 구속을 받고 그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비춰내는 사역자들이 되었는데 이 사역은 옛 언약 아래 있었던 사역과 다르다. 모세의 얼굴에 있는 빛은 장차 없어질 영광이었으나 새 언약 아래서의 사역은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사역으로서 마침내는 주의 형상으로 화하는 것이다.
의문의 사역은 자신의 생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으로 하는 것이다. 지식은 더하면 더할수록 자신이 먼저 심판을 받고 또 남을 심판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정죄 아래 놓이게 되고 남도 정죄 아래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사역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생명이 성숙하고 주님과 하나 되어 동행함으로 주의 형상으로 화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도 오래 함께하면 닮아 가는데 하물며 영의 생명이랴!
주님은 새사람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고 새 언약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을 인격으로 비춰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하신 우리의 영원한 본이시다. 그러므로 그와 동행하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와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3:18).
8) 보화를 담은 질그릇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에게 포로 된 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포로 됨으로 개선장군의 향기기가 되었고 그 향을 날리는 사람들이 되었으며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되었고 그 영광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었는데 이는 다 사역자 자신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주로 말미암은 것으로서 보화를 담은 질그릇과 같다는 것이다.
질그릇은 천한 것으로서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하찮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을 들어서 세상에서 귀하다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흙으로 지어졌고, 노아는 네피림의 세계에서 구원의 방주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아브람은 바벨의 세대에서 부름 받았고, 모세는 팔십 세의 양치기로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선택 되었다.
새 언약의 사역자들 역시 갈릴리 어부들 중에서 선택 되었고 예수를 극렬히 핍박하던 사람 중에서 사로잡은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런 분인가? 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이런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이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고 담대함이 있다(4:7).
새 언약의 사역자가 되기에 무엇이 부족한가?
포로 됨이 자격이라면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고 거울이 된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질그릇은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다. 오로지 보화만을 자랑한다. 보화를 자랑하는 것이 자기의 유일한 기쁨이며 자랑이다. 보화가 없으면 자신은 질그릇일 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은 보화에 달려 있다. 보화는 자신의 생명이고 부활이고 영생이다. 영광이고 자랑이고 능력이다. 인생의 비극은 그릇이 나빠서가 아니다 보화가 없어서인 것이다.
사탄은 인생을 속여 비극 속에 빠뜨려 놓고 이 비극은 그릇이 나빠서라고, 인생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죽은 후에밖에는 해결이 없다고, 또 속임으로써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고 인생을 절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간교한 계략을 훼파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인생에게는 소망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다. 사람은 원래부터 보화를 담기 위한 질그릇으로 지어졌다. 질그릇은 사단에게는 쓸모가 없지만 하나님께는 유용한 것이다.
물건은 그 용도에 따라서 값이 달라진다. 장갑은 손에 끼워야하고 양말은 발에 신어야 한다. 무엇은 좋은 것이고 무엇은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담을 그릇으로 지음 받았다.
이것은 최고의 은혜다. 그런데 사단은 아담에게 하나님 같이 되라고 유혹했던 것이다. 하나님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담기 위한 그릇(형상)이 맞춤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시오 본체의 형상이시라(히1:3).“ 하였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목표로 사람을 지으신 것이다. 질그릇에 보화, 보화를 담은 질그릇,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절묘한 조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