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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1)
본문: 고후 4:1-6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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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1)
1) 그리스도만을 전함(4:1~6)
보물을 담은 질그릇은 오로지 그 보물만을 자랑하게 된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보물만을 자랑한다. 자기는 제쳐버리고 보물만 나타내기를 원한다. 보물은 자기의 자랑이며 명예이고 행복이고 영생이기 때문이다.
이 보물은 우리와 함께하는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자신을 표현할 존재로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거룩한 위임을 주셨다. 너는 나를 대신해서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기름부음, 즉 하나님의 그리스도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하늘에 오르려고 거역하고, 자기들의 나라를 얻으려고 탐심을 부린다. 아담은 거룩한 위임을 받고서도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다가 흩어졌고, 다시 이스라엘은 왕국을 얻으려고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보고 절망하고 흩어져버린 것이다. 흩어지지 않고 나라가 되려 했던 인간의 모든 소망이 다 끊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거역하고 탐심이 가득한 자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거역과 탐심은 하나님 같이 되려는 인간의 속성이다. 이 속성 때문에 건축이 되지 못하고, 몸을 이루지 못하며 흩어지고 모여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속성을 해체하기 위한 길은 죽음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자신의 죽음으로 처리하고 하나님의 새 창조를 가져오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산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거역으로 바벨로 가던 사람들도, 탐심으로 예수를 따르던 우상숭배자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다 폭로 되었다. 예외가 없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예수의 죽음 안에서밖에는 거역과 탐심이 끝날 수 없는 것이다. 나름대로 하나님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오르려고 하다가 흩어진 사람들이나,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흩어진 사람들은 모두 예수의 죽음 앞에서 심판 받고 죽었다. 우리는 모두 바벨에서 흩어진 사람들이며 갈보리에서 죽은 사람들이다.
죽으심으로 모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자신의 죽으심 안으로 나를 끌어들여 함께 죽게 하시고, 자신의 사심과 함께 일으켜서 새 생명 안에서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롬6:4참).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위대하다. 지혜와 영광과 찬양이 그에게 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완전하게 이루시는지! 말씀을 다 이루셨다. 옛 것을 끝내시고 새로 창조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영광과 찬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하나님 속에서 나오신 분이다.
우리와 함께하신 그리스도를 전함
그런데 이분이 우리 모두의 보화가 되기 위해 과정을 거치시고 지금 이 질그릇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 생명이 되어 함께 있다. 할렐루야!
전에는 그와 나는 서로 다른 길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으심으로 나를 포함하신 후부터는 그가 어디에 있든지 나도 거기에 있다. 나는 그를 떠날 수가 없다. 떠나지지 않는다. 어디서나, 언제나 나는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 나는 그를 버려도 그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 이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 태초의 목표, 영원한 목적 그리스도, 이 사람과 한 운명이 된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이렇게 하려고 천지를 지으시고 나를 지은 것이다. 보물이다! 그리스도는 내 인생을 복되게 하는 보물이다.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시는 보물이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위임이 없다면 무엇인가? 다른 생물들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질그릇이다. 나는 빛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 빛나 봐야 질그릇이고 자랑해 봐야 유치하다. 동물 중에 한 종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즉 거룩한 위임이 있음으로 고귀하다. 그런데 그분이 나와 함께 있다. 빛날수록 영광스럽고 자랑할수록 사랑스럽다. 나는 그 영광에 가려지고 그 사랑에 감싸진다.
하나님께서 보물을 질그릇에 담아주신 것이다. 이 보물은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인생을 복되게 하는 보물인 것이다. 사역자들의 삶은 이 은혜를 자랑하고 이 보물의 가치와 영광을 비춰내는 것이다.
낙심하지 않음
이 거룩한 사역을 위임 받은 것은 그의 긍휼하심을 받은 것이다(4:1).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으며, 숨겨진 부끄러운 일을 버리고, 간교하게 행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지 않으며, 진리를 나타낸다(1:2).
복음은 잘 이해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인간의 상식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마다에서 오해를 받았다. “무슨 비밀한 일을 한다. 간교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모은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였음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하신 일은 아담 안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가 하신 일을 다 이해했다면 아담이 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사단의 말을 들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의 긍휼 안에서 위임을 받았다. 질그릇에 보화를 주신 이를 믿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이 위임이 어떤 위임인가!
전통에 사로잡힌 자들은 새로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섞었다고 했다. 그러나 복음은 섞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정제 된 금과 같다. 완전하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에게 버림받고 심판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남은 것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창세 이래 지금까지 인간이 쌓아놓은 모든 좋은 것이 다 없어졌다. 여기에 무엇을 섞을 수 있는가?
죽음을 전파하는데 무엇을 섞을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고 작정했다”고 했다(고전2:2). 더 알면 섞는 것이다. 더 이상은 부풀리는 것이며, 더 이하는 감소시키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다. 우리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 앞으로 가기 위해, 원상회복을 위해, 인간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새 창조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