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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8)
본문: 고후5:20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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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8)
하나님의 대사로서 일함(5:20)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첫 단계를 거치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롬3:24)을 얻고 화목을 이루며,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면 하나님의 의(고후5:21)가 됨으로 완전한 화목에 이르게 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사죄와 축복을 선포하고 백성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가 되어 고린도교회에게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5:20).”고 권고하였다. 그는 지성소에 있는 화목의 덮개 위에 제단에서 흘린 제물의 피를 드림으로써 두 단계의 화목을 거치고 하나님의 의의 대사로 파견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번제단에서는 제물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죽음으로 시인하여 객관적으로 하나님에게 의롭다함을 얻고 화목하게 되었지만 지성소에서는 제물의 피를 직접 드리고 하나님의 의가 되어 화목하게 된다.
두 화목의 차이는 첫째는 하나님만 인정하시는 ‘의롭다함’이지만 두 번째 화목은 송사하는 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제적인 의로움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대사로 파송할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도 두 번째 화목(katallasso-reconile)을 권고하는 것이다. 화목이란 ‘바꾸다(change)’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사람이 누구를 위하여 일하려면 충성심이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대사로서 일하려면 먼저 위치와 삶을 바꾸어 그와 화목해야 한다. 이미 선악과를 먹고 이탈하여 원수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충성은 다음 일이다. 충성심보다 더 완전한 관계와 자격이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와 자격은 자신을 그에게로(into him)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에게 다시 두 번째의 화목을 요구하신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하였다(5:15). 여기 ‘위하여’라는 뜻은 객관적으로 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으로’라는 뜻이다(NIV-for, KJV-unto, DV-to).
첫 단계, 즉 번제단에서 범한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의롭다함 안에서 성소의 봉사자가 된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의롭다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죄 자체가 된 우리의 육을 처리하여 둘째 단계의 화목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육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사탄의 송사거리가 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제단의 피(죽으심의 상징)를 직접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를 덮는 화해소(속죄소) 위에 뿌림으로써 둘째 단계의 화목을 얻은 후에 여호와의 대사가 되어 백성에게 축복을 선포했다.
이와 같이 새 언약의 사역자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고 다시 사신 자를 향하여(to him) 삶으로써 그의 대사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선포함으로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사가 되는 사람은 보내신 이 자신과 하나여야 한다. 자기가 없고 오로지 보내신 이만이여야 한다. 그래서 재귀동사를 사용했고 그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위하여(for)’ 대신에 ‘향하여(into)’, 혹은 ‘(to)’를 사용하여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현장의 대사로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전권을 위임 받고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다. 현장에는 언제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대사로서의 나만 있다. 그러므로 그와 하나여야 한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는 일은 자기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요4:34,5:30,6:38,마26:39참).”고 하였고 “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요1:14:9).” 하였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서 군복을 벗었다. 그는 한국전쟁의 승리를 눈앞에 두었으나 보내신 이의 명령에 따라 군복을 벗었던 것이다.
대사는 자신의 뜻으로 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일은 자신이 하는데 자신의 뜻이 없이 보내신 이의 뜻만 실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때 그때 명령을 받아서 하면 좋은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나 혼자서 일해야 하니까 어려운 것이다. 결국 최종 결정을 자신이 하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사로서 일하려면 그분과 하나여야 하고 한 마음이여야 한다. 이것이 번제단에서 다시 지성소로 부르시는 이유다. 의롭다 함을 얻은 자라도 지성소는 피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성소에서만 봉사하고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가게 했던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대제사장이 될 수 없고 법에 정해진 아론의 자손들만 허락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만 지켜져야 했던 예법이다(히9:10 참).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신의 피를 드리심으로써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했다(히9:12 참). 이로써 단번에 가는 길이 열렸고 아론의 자손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로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서 권고한다고 하였다. 예수님도 아론의 자손이 아니지만 지성소에 들어가셨고 바울도 아니지만 화목한 것이다.
번제단에 계신 예수를 보고 그 피를 믿고 의지하면 의롭다 함을 얻어 성소에서 봉사하게 되고, 성소에서 매일 같이 그리스도를 밝히며,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떡을 드리고, 그분의 소원을 위해 기도하면 주님의 피를 의지만 하던 사람이 그 피를 자신이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대사로서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대사로서 일하는 사람, 그분의 동역자, 그분의 배필, 그분의 신부……. 이 어떠한 위치이며 영광인가! 사람으로 태어났고 선악과를 먹고 육체가 되었던 인간이 이렇게 변화 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천사도 알지 못했던 비밀 중에 비밀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