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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11)
본문: 고후6:14-7:2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7:2.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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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11)
아버지를 알게 함(6:14~7:1)
사역자들의 삶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화목 하게 하는 직책을 받았다. 이것은 전쟁에서 군대로서 임무를 맡은 것과 같다.
사단은 자기가 노략한 사람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회수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은 구속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하여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가장 친근한 관계다.
구약성서의 마지막 구절 말씀은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리게 한다.”하였다(말4:6참). 하나님이 사람을 다른 만물과 구별하여 지으신 것은 생명나무를 통해 아들이 되게 하려 하신 것이다(요1:12참). 그래서 생명나무를 동산에 두고 임의로 먹으라 하신 것이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한 생명으로 연결하는 양식이다. 하나님을 대신하려면 피조물로서만이 아니라 반드시 생명으로 연결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대신하는 것도 화목(하나 됨)이 필요하지만 존재를 대신하려면 반드시 생명의 연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나 됨은 생명의 연합이다. 아담에게 협력자가 필요했을 때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고 둘이 한 육체가 되라 하셨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였다. 실제로 하나라는 것이었다(창2:23,4참).
생명나무는 생명의 연합을 위하여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다면 아들이 되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심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머리와 몸으로서 하나인 것과,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로서 그의 집(장막)이 되는 것은 물론, 몸과 지체, 지체와 지체가 하나인 것이 다 한 원리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하셨다(요15:5).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 하셨고(요10:30),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같이 저들도 우리 안에 있어 하나가 되게 하소서(요17:21) 하였다. 이것이 생명의 연합이다.
완전한 화목은 아버지를 알고 그와 연합하는 것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절정은 생명의 아버지를 알게 하여 그와 연결하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낸다. 보내는 자는 아버지이고 보내심을 받은 자는 아들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내 아들로서 세상에 보낸다. 내 아들은 나로 인하여 세상에 있고 나는 아들로서 세상에서 행한다. 아들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들 안에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요12:45참).
어떻게 아버지를 아는가?
(1) 아들로서 아버지를 알게 함
아버지의 말씀, 즉 아버지의 양식을 먹으면 생명은 아버지를 인식하게 된다. 창조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아버지는 분명히 있지만 스스로 그를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생명의 성숙과 함께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를 알지 못한다. 더구나 아버지 하나님은 경험하고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살면서 알아가는 것이다. 희랍인들은 생각 속에서 절대자, 혹은 근원자가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경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자기들의 힘이 다했을 때, 궁지에 처했을 때, 자기들을 구원하시고, 부모처럼 양육하여 주신 이를 경험한 것이다. 성서에 언급 된 하나님은 사변적 산물로서의 어떤 신이 아니다. 경험을 통하여 알아진 친밀한 아버지 하나님인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경험 된 하나님이다. 갈대아우르에서 시작해서 애굽과 광야를 거치면서 철저하고 생생하게 경험한 한 분을 그들은 여호와, 즉 “나는 ...이다” 이신 분이라고 이름 해서 부른 것이다. 여호와는 우리말로는 “나는 ...이다”이고 영어로는 "I AM....." 이다. 항상, 어디서나, 언제나, 무엇이나, 가능하게 하신 분이더라는 것이다(출3:15참).
그런데 이 분을 아버지로 알게 된 것은 다윗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 되었다. 다윗은 영감으로 시를 읊은 중에 아버지를 불렀고(89:2참), 예수는 일상적으로 아버지를 불렀으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요10:30)고 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에 연결하여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하시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하셨다(요6:54~56참). 그는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다(계2:7). 아담은 이 참된 양식을 먹고 하나님과 연결 되어 그의 동산을 지켜야 하는데, 거역하는 자의 양식을 먹고 사단과 연결되었음으로 바벨을 건설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로의 양식을 먹고 그의 국고성을 건축하는 데 노예로 동원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양식(만나)을 먹고 성막을 건축했는데 이는 아담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산 혼으로 지어졌다. 그러므로 어떤 양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삶이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양식에 주의해야 한다. 성막을 건축하는 이스라엘에서 가끔씩 불거진 불평은 양식 문제였다. 애굽의 양식을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한 것들은 애굽 사람들의 기호식품이었다. 참외, 수박, 부추, 마늘......
야곱의 족속은 먹을 양식을 찾아서 애굽으로 내려갔으나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애굽인들의 기호식품에 입맛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절실한 필요를 찾아간 것이기에 여호와께서도 허락하셨으나 다음에는 애굽 사람들의 기호에 동화되고 빠져 듦으로서 바로의 종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알려하면 아들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아들의 양식을 먹으면 아들이 되어 아버지를 알게 되고 종의 양식을 먹으면 종이 되며 거역하는 자의 양식을 먹으면 거역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하여 더 친밀한 화목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 아들만이 아버지를 알게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역자들 역시 아들로서 아버지를 알게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