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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12)
본문: 요14:1-11, 고후5:18-20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요14장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고후5장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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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12)
요14:1~11,고후5:18~20,
아버지께로 가는 길, 진리, 생명.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을 위하여 사람들을 영원하신 아버지께로 인도하여야 한다. 주 예수님은 이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속(원위치로 회복)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을 분배하셨으며, 아버지 집에 함께 거할 처소를 마련하려 가셨다(요14:1~3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셨으며 지으신 사람을 위하여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그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지키고 다스리게 하셨다.
또 아브람을 불러 언약을 세우시고 세겜과 벧엘을 거처 헤브론에 정착하게 하셨는데 헤브론은 하나님과의 교통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그 곳, 막벨라 굴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 삼대가 안장 되었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들을 자기들의 열조라 불렀으며 다윗은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하였다.
열조들이 헤브론에 묻힌 것은 살아서 완전한 교통을 갖지는 못했으나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통을 바랐던 그들의 소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그와의 영원한 화목 안에서 친밀 하게 교통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수를 만난 사도들은 그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원했으나 가신다는 말을 듣고 근심하며 불안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근심하지 말라 아버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고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은 너희와 함께 할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기 위한 것이라 하셨다(요14:1~3).
그리고 도마가 아버지께로 가는 그 길을 물었을 때 주님은 “내가 곧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14:6) 하셨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가는 방법을 찾는다. 여러 종교가 구하는 것은 그 형식이야 어떠하든지 다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인과 아벨은 인류 중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나아갔던 대표자들이었다. 자신들이 정성을 다해서 얻은 소득을 가지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식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다.
이 방법은 가장 합리적이고 알맞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정성과 음식물,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정성으로 음식을 드리는 예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제물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다.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먹어야 살고 살아야 교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물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에 제물 뒤에 숨어있는 인간을 보시고 교통할 수 없었음으로 그의 제물도 받지 않으신 것이다.
사람은 제물(소득)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갈망은 사람이다. 마음에 든 사람이 없어서 배고프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통은 사람됨에 다려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아들뿐이다. 다른 길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아들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고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오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아버지께 가기도 하며 오기도 한다.
아버지를 나타내는 진리(실제)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를 나타내는 진리, 즉 실제라 하셨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나타내는 자는 아들이다. 그 아들을 보아서 그 아버지를 안다. 소를 보고 소의 아버지를 알고 말을 보고 말의 아버지를 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그의 아버지를 알고 믿는다. 그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을 보고 알며(롬1:20참)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고 안다. 우리는 예수를 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안다(엡1:3참). 예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현실이고 실제다(골1:15참).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친밀하게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를 아버지로 누린다. 동산에서는 하나님과 화목 중에 함께 살았다. 그러나 동산을 떠난 아담은 두려움으로 숨은 자리에서 단지 그의 음성을 들었으며, 율법 아래서는 친밀하면서도 두려운 분으로 교통했으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타내셨음으로 우리는 지금 예수 안에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 화목을 누린다.
아버지를 살아내는 생명
예수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시작이시며 사랑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표현이고 삶이다.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아버지의 현실이며 삶이다(골1:15참).
예를 들면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구속자(시19:14참)였으나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를 진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구속하시는가?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지금 실제적으로 우리의 구속자가 되신다(고전1:30,엡1:7,골1:14). 예수께서는 이 비밀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로써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구속하여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은 자신을 희생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만민이 볼 수 있도록 아들로서 삶으로 열어보여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모든 비밀이 예수 안에서 그를 통하여 삶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무 비밀도 없다. 비밀이 없으면 화목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아버지의 실제이며 아버지의 삶이신 예수를 전하고 심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
새 언약의 목표는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며(렘31:31,2참) 구약 예언은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리게 하겠다.”(말4:6참)로 끝을 맺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섬기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가 되시는 길이요 실제이며 생명이 되시는 예수를 알게 하는 것이다 (딤전2:5,히8:6,9:15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