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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18-2)
본문: 고후10:7~18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성경 본문7.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찐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10.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11.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줄 알라
12.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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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사역자들의 삶(18)
복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이름
(고후10:7~18)
바울은 육체대로 행한다 하는 말을 들었다. 그들이 말한 ‘육체대로’란 사역자들에게 막말을 하는 것과 같다. 여기‘육체’라는 뜻은 부정적인 인간성의 총체를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창6:3참).
그러나 바울은 온유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우리가 육체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로 행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외모로 행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답하였다. 외모로 행한다는 말은 ‘실상을 속이고 자기를 자랑하며 자기를 내세운다.’ 등등의 비난을 표현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말이지만 바울은 다시 온유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우리가 너희에게 외모로 나아간 것이 아니요 오로지 복음으로써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 하였다.
‘나아간다’는 것은 계획도 포함하지만 ‘이른 것’은 계획이 아니지만 넘쳐 간 것을 의미한다. 복음은 만민에게 도달하는 하나님의 은혜다. 막힌 곳에서는 뚫리기를 기다리고 닫힌 곳에서는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흘러 흘러서 만방에 이르는 것이다.
말과 글이 하나인 사람으로
글은 무게가 있으나 말은 시원치 않다는 비난을 받은 바울은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쓴 사람이 하나로서 자신은 말 다르고 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사역자는 말과 글이 하나인 사람이다. 말로도 그리스도를, 글로도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 말과 글, 겉과 속이 같기가 어렵다고 한다.
겉은 체면으로서 율법적이고 사회적인 입장 앞에 있지만, 속은 자기 욕심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역자는 오로지 목표가 하나이므로 겉과 속이 다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로 말하면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인데 어떻게 샘이 한 입으로 쓴 물과 단 물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만 속이고 속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역자가 한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두 사람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다. 교리나 지식을 전할 경우 다를 수 있지만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쪼개서 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님 자랑이 자기 자랑인 사람으로
자기 자랑이 심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주 안에서 자랑하노라 한다(17).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자랑한다. 이기려고 자랑하고 이겼다고 자랑한다. 높아지려고 자랑하며 높아졌다고 자랑한다. 어찌 하든지 자기를 세우려고 자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기준으로 바울을 판단하고 비난한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같이 되려는 인간은 무슨 방법으로든지 자기 의만을 세우려 한다. 하나님에게로 돌아서기 위한 회개의 제사, 교통과 교정을 위한 율법, 그 모든 것을 다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이용함으로써 죄를 범하고(롬3:23)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롬6:23참).
이런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롬1:17). 어떤 방법으로도 회개와 교정이 불가능하므로 사망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서 아들을 주신 것이다.
아들은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간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자신과 함께 심판 받게 하고, 함께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신 것이다. 아들 안에서 심판도 받고 의롭다 함도 얻는다. 이것이 복음이며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차별이 없는 것이다.
이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원위치로 환원되었다. 사단으로 인하여 죄가 된 인간을 십자가를 통하여 다시 찾아와서 죄 없는 인간이 되게 함으로써 생명의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 주고 부활을 통하여 새 사람, 새 인류가 되게 하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아들 안에서 원위치로 환원된다.
이것이 새 생명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다. 사역자들은 이것을 자랑한다. 결코 선악과를 먹은 그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 베푸신 분을 자랑하고 은혜 받은 자신들을 자랑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다 하나에서 낳았으므로 결국 이 자랑은 하나다(요12:44,45참).
그러므로 주신 이를 자랑하면 받은 이가 자랑이 되고, 받은 이를 자랑하면 주신 이가 자랑이 되는 것이다. 복음은 신성한 자랑이다. 우주 안에 참된 자랑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시다(1요5:20참). 아멘.
전에 우리는 위치를 이탈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헛된 것을 자랑하려고 끝이 없는 땀을 흘렸던가?(창3:39참) 하나님과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로 만날 때 얼마나 자랑이 많으며, 얼마나 친근함이 깊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에서 만나는 소식,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 의로서 인생들에게 오셨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이며 그 아들들의 자랑인가? 주님은 평생을 자랑해도 부족하기만 하고 주님에게 포로 된 사람은 포로 된 자기를 자랑함에 있어서 일생이 부족하다. 자랑하면 할수록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자신이 만족을 얻는다. 구원을 누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길로
나를 자랑하는데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며 주님을 자랑하는데 내가 왜 충만에 이르는가? 사단이 조작해 놓은 세상에는 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 기준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사도들이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나 포로 된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다 외모적인 것으로 보이고 자기 자랑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어 증오심까지 폭발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랑하다가 신성모독 죄로 판결을 받고 죽임당하셨다. 그런즉 바울에게도 당연하고, 우리에게야 더더욱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주신 능력은 다 너희를 파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세우려고 한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였다(8).
복음은 자랑이다. 하나님의 자랑이며 우리의 자랑이다. 사람을 유린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 마귀에게서 인간을 되찾았다는 하나님의 자랑이며, 그 인간이 참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다는 자랑인 것이다.
복음을 자랑하는 것은 외모와 상관이 없다. 바울은 언변이 좀 모자랐던 같다. 그래서 글은 중한데 말은 형편없다고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쓴 사람이나 말을 한 사람은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로써 바울을 헤아렸다. 사람은 자기로써 남을 헤아리므로 지혜가 없는 것이다.
지나치지 않음으로
세상적인 자랑은 지나쳐서 문제다. 돌아서면 부끄러울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오늘의 자랑이 내일은 부끄러움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부끄러움이 내일에는 자랑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항상 조심해도 늘 지경을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지나침이 없다, 오히려 지경을 넘어가야 한다. 만방에 전파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분량 이상을 자랑할 수 없다.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눠 주신 분량의 한계를 따라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하였다(13).
자기 자랑은 통제가 없으므로 지나쳐 가지만 복음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우리가 경험한 것이므로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친 자로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하였다(14).
또한 억지로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모자라거나 혹은 불완전하다면 내 힘을 더해야 하지만 넉넉하므로 다른 힘이 불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내 힘을 더 할수록 복음은 퇴색되고 본질은 가려지는 것이다.
복음의 확산을 바라는 사람으로
복음은 사역자의 어떠함과 믿는 자의 어떠함 안에서 전파된다.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너희의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 더욱 위대해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15). 씨는 밭에 따라서 30,60,100배로 소출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로까지 지경을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랑하라.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자랑하라. 그러면 넘쳐서 지경을 넘어갈 것이다. 사단이 막아놓은 성벽이 무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