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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새 언약의 사역자들의 생활(21)
본문: 고후11:1~15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고후11:1-15
1.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줄 생각하노라
6.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9.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10.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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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새 언약의 사역자의 삶(21)
중매자로서(3)
(고후11:1~15)
유일하신 예수
교회에서 사도들이 전한 예수 외에 다른 예수를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바울 시대에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 혼란을 일으켰던 무리는 크게 둘인데 하나는 철학에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주의로서 에비온파였다고 한다.
영지주의는 희랍의 이원론에 동양의 신비주의가 합해진 것으로서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강조한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구속을 부인하여 교회에 혼란을 주었으므로 사도 요한을 격분하게 하였다.
다른 하나는 에비온파 기독교로서 예수를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유대교에 편입하려 하므로 주로 이방인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으므로 바울을 괴롭혔던 것이다.
요한은 영지주의자들을 방어하느라고 요한복음과 그의 서신들을 썼고, 바울은 에비온주의를 방어하려고 갈라디아서 등을 썼던 것이다.
사도들은 죽으시고 다시 사신 하나님 아들의 증인들이다. 신성이냐 인성이냐 하는 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들의 관념이고 사도들이 경험한 예수와 다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325년 종교회의에서는 삼위일체 교리를 정통교리로 결정하였으나 교회 현장에서는 이해가 애매하고 어려운지라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창조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교리로 확정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면 참 예수, 유일한 예수,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는 누구인가? 만유를 포함하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여 지으신 이에게 되돌리고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의 주가 되어 새 시대를 이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잃은 아들을 찾아와야 하고 사람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 예수다. 그의 구속 사역은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를 한 자리에서 해결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완성을 향하여 다시 궤도를 찾아 전진하게 되었다.
그는 유일한 구속자시다.
사도들은 신학자들이 아니었다. 단순한 예수의 증인들이었다. 그에게서 일어난 사건의 목격자들이고 그를 통하여 경험된 삶의 증인들이다.
함께 죽고 함께 살았다. 그들에게 이처럼 놀랍고 신기한 일은 없었다. 이 일은 감출 수 없는 일이었고 묻어 둘 수 없는 보화였던 것이다. 이 경험 안에서 교회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것이 후에 성경이 된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대하여는 그분의 보여주심에 대하여 경험해본 사람들의 증언과 지금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이 전부다. 그 이상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보여주신 만큼 알고 들려주신 만큼 들으며 함께하신 만큼 만져지는 분이다. 요한은 본 바요 들은 바요 만진 바라 하였다(1요1:1 참).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하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밖에 할 수 없다. 예수는 구속에서 유일하시고 새 생명의 주가 되심에서 유일하시다.
유일한 영
사도들은 이분의 영을 전했다. 그런데 다른 영을 전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영은 생명 주는 영이다(고전15:45). 구속 받은 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었으므로 그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영, 즉 생명 주는 영이 필요하다.
이 영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영이며 우리에게 도달하기 위하여 과정을 거친 영이다. 함께 죽으시고 함께 살아나신 그분의 영은 유일한 영이다. 이분과 분리된 영은 다른 영이다.
유일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고 그 영이 유일하다면 복음도 유일하다.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새 생명을 주셨다는 소식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문제를 죽음으로 다 소멸하고 새 생명으로 다시 시작하신 것이다. 새로운 창조다. 첫 번째보다 더 나은 창조다. 아담이 미처 받지 못했던 모든 것을 이제는 다 주신 것이다.
이 모든 새로움, 그 축복은 다 사도들이 전한 예수로 말미암은 것이다. 참 예수를 전하는 것이 참 영을 전하는 것이며 참 예수를 전하는 것이 참 복음이다. 예수 아닌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다른 것이다.
다른 복음이 많을지 모르지마는 우리를 구속하여 참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하고 새 생명을 주어 주와 함께 살게 하는 복음은 유일하다.
중매자로서의 사역자는 마땅히 예수가 누구인지를 바로 소개하여야 한다. 이적을 행하신 이, 진리의 말씀을 하신 이, 하나님 아들..... 소개할 항목은 많다. 그러나 예수의 유일하심은 구속과 새 생명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