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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택함을 입은 사역자
본문: 갈1:15~24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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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C. 택함을 입은 사역자
갈1:15~24
당시 사람들의 관념은 사도는 예루살렘 본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은 사람의 생각이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택하시고 부르셔서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교회사 안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로서 중요한 본이 된다.
바울 이외의 다른 사도들은 다 예수를 직접 따라다녔고 함께 살았던 증인(눅24:48참)들인 반면에 바울만은 핍박하던 자가 갑자기 돌아서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런 일로 인하여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사도됨의 조건이 사람의 관념이나 지식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어떤 규정이나 제도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으로 후세에 귀중한 그 무엇을 남겨준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사람은 사도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사람을 택하시고 보내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계획은 측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한 사도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신 이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우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딤전1:16)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다.
바울의 사도됨은 예수를 육신으로 만나보지 못한 오늘 우리를 위한 은혜로운 본이다. 주님의 택하심이 있고 부르심이 있다면 누구나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축복이며 은혜로운 복음인가!
어머니의 태로부터 구별하심
바울은 자신이 모태에 있기 전부터 하나님이 자기를 택하시고 생각지 못한 때에 부르셨다는 것이다.
바울처럼 극적으로 부름 받아서 자신도 모르는 세계에 붙잡힌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복음을 말함에 있어서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하였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놀라운 부름을 받고 돌아서서 걷는 길에는 모든 것이 다 놀라운 것이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것뿐이었다.
사람은 같은 지구에서 같은 사람들과 산다. 그런데 부름이 다르면 다른 세계를 본다. 부른 곳이 다른 곳이며, 부르신 이가 다른 분이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라도 부름이 다르면 내용이 달라지고, 심하면 운명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으로서는 모르는 부름을 받았기에 출생 전으로 돌아가서 말하였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라고.
이것은 자신의 출생 전을 알아서 한 말이 아니다. 자신의 소관이나 사람의 생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영원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모태 이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태로부터 태어난 것을 알며, 창조를 알지 못하지만 있는 것을 보아서 창조자를 믿으므로 무릎을 꿇고 자기의 짧은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행9:5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한다. 사람을 지으실 때 이미 목적이 있어서 사람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의 경험으로 이것을 알았다. 내 생각과 내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큰 계획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뒤집힌 것이다. 율법에서 은혜로, 시간에서 영원으로. 율법과 시간은 사람의 육신과 관계 되고 은혜와 영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아들을 내 속에 나타내시려고 부르심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아들을 자신이 지은 사람 속에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동산을 떠난 아담은 단순히 그의 영역만을 잃은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시려는 그 아들(생명)을 잃은 것이다. 열매 맺을 수 없는 나무같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선악을 아는 지식만 있고 하나님의 표현인 아들이 없는 것이다. 나무는 가지에서 열매를 얻고,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아들(열매)를 얻는다. 그런데 아들이 없으므로 하나님 표현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들은 그 열매다. 하나님은 열매 없는 아담을 흙으로 돌아간다 했고 예수께서는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셨다.
이 나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 은혜로 된다. “택정하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는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하였다.
바울은 유대인이지만 이방 땅에서 태어나서 그곳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다. 주님은 나 있는 곳에서 그냥 부르신다. 은혜다(15,6). 만민에게 베푸시는 은혜다.
바울 안에서 우리를 부르심
우리는 모두 이러한 계획과 목적 안에 부름을 받았다. 영원 안에서 택하셨기에 선악과를 먹었지만 길이 참으시고, 율법의 저주 아래서 은혜로 부르셔서, 그 아들을 우리 속에 나타내시고 만민에게 전하게 하려고 지금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