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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아들을 계시 받음
본문: 갈1:15~17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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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D. 아들을 계시 받음
갈1:15~17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자기가 핍박하던 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교회의 영접을 받고 눈을 뜬 다음에 아무와도 의논하지 않고 아라비아로 가서 예수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며 그들은 유대교의 영향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고 바울 역시 이방 땅에서 출생하고 교육을 받았으나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만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기다리는 민족이 없었다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나 역사와 관념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써 그것을 먹은 사람으로서는 하나님 아들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를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선악을 아는 지식은 생명과 대립되는 것이며 생명의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인적이 끊어진 사막으로 바울을 이끄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로 된 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생명과를 주시면서 하나님과 사람이 동거하는 동산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그런데 그가 선악과를 먹고 동산에서 추방된 후에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며 그들은 제물을 드리는 자리에서 형이 아우를 죽인 것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것이 인간 역사의 계시로서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역사는 절망적이다.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으나 다시 네피림 판을 만들었고 , 노아를 구원하였으나 다시 바벨을 건설하였으며, 아브람을 부르셨으나 애굽에 팔려갔고, 모세를 통해서 구속하고 다윗으로 나라를 열었으나 오래 가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또 그때, 그때마다 경고를 주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율법을 주었으나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로 인하여 오히려 멸망과 정죄만을 당연하게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중에 긍휼을 베푸사 바울을 불러 그 아들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시고 그를 아라비아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복음은 전적으로 그가 계시 받은 아들을 유대인만이 아닌 온 이방에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이 아니었더라면 아들은 오로지 유대인의 메시아로만 전해지고 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인류가 어떤 경과 안에 있었든지 간에 자신이 창조한 인간에게 자신의 아들을 주어 그의 목적 안으로 구원하는 것이다(요3:16참).
복음은 하나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소식이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때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예비했던 모든 것을 잃었는데 그 내용은 아들을 잃은 것이다.
아들은 후사로서 열매와 같다. 한 나무가 존재하는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열매는 나무의 후사다. 이와 같이 만유는 사람을 통하여 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 열매는 땅에서 하나님을 이어 나타내는 후사로서 하나님 아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열매를 얻으시려고 만유를 지으시고 그 만유를 사람에게 맡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 하시고 한 사람,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고 했다(창1:26,7참).
만유 중의 하나인 사람이 그 만유를 다스리고 지배하려면 하나님 생명을 받아서 번성해야 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지만 하나님 생명을 받으면 아들이 되어 (시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없으면 땅은 저주 가운데 있게 되고(창3: ) 하나님의 신은 앉을 곳이 없어서 수면에 배회한다는 것이다(창1:2참).
그러므로 말씀-하나님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복음이며, 사람 속에 왔다는 것은 복음 중에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이신 예수께서는 먼저 땅을 정복하고 있는 마귀와 대결하여 그를 정복하셨으며, 인간 역사와 그들이 생산해 놓은 모든 관념들을 일소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새 생명을 주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이 사람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셨다.
다른 사도들은 육신으로 예수를 만나서 그의 삶과 죽음을 목격했고 다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증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기하고 놀라운 분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를 경황 중에 만났으므로 그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고 안다는 것은 유대교를 방해하는 이단으로밖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하심을 인하여 자기 안에 하나님 아들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사람 안에 그 아들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셨다. 만유를 지으신 목적은 사람에게 있고,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그의 아들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위치를 버리고 떠났고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아들을 모른 채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했지만 만유의 후사로서 그를 알지 못하고 그의 행적과 능력과 삶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단지 나는 예수교를 믿는 신자였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들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것은 아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있는 것 같은데 아들이 없는 것이다. 아담은 모든 것의 모든 것, 즉 아들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아들은 누구인가?
아들은 만유의 후사다. 만유는 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나무와 가지와 같은 것이다. 나무와 가지는 한 열매를 위하여 있고, 만유는 사람을 위하여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 생명을 받아 아들이 되어(요10:35,출7:1참) 만유에게 생명을 분배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 아들은 생명의 분배를 위하여 한 알의 밀로서 죽으시고(요12:24), 새 생명을 위하여 부활하심으로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고전15:45).
아담이 선악을 아는 지식에 대하여는 죽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다면 그 인격에서 하나님 아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느10:35,고전15:20~23,약1:18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