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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복음 안에 있는 자유
본문: 갈2:1~5,3: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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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E. 복음 안에 있는 자유
갈2:1~5,3;1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만들어졌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함으로서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다.
중국인들은 왕은 하늘이 명한다고 해서 천자라 했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영원한 왕권을 갖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했다.
결국 사람은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위임과 직책에서 벗어나면 도리어 만물의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게 되어 종이 되는 것이다. 종에게는 자유가 없다.
그 결과 땅은 저주를 받고 양식 대신에 가시와 엉겅퀴로 사람을 괴롭게 함으로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힘을 써서 겨우 먹고 살다가 원래 흙이었음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신성한 위임을 버렸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자유도 함께 잃었다. 새는 공중을 나는 자유가 있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자유가 있다.
만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영역 안에 있으면 자유가 있고, 그 영역을 떠나면 그 생명의 자유도 함께 없어지고, 고생과 죽음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역사는 잃어버린 자유를 얻기 위한 역사다. 문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상징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표현 된다. 미국인의 자부심은 자유다.
그들은 이 자유를 얻기 위하여 아메리카를 찾았고,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외국에까지 가서 목숨을 버리면서 싸우는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 국민들의 소원을 담은 구호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였다. 이것은 산 혼으로 지어진 인간 역사의 한 면으로서 주로는 정치적 자유가 중심이 되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각각의 생명마다에 천부적인 자유가 있는데 이 자유는 모든 자유보다 궁극적인 것이다. 생물들에게는 살기 위한 자유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한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 위에 하나님이 주신 자유가 있는데 이것은 인생에게 위임 된 사명과 관계 되며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자유다.
바울은 죽고 다시 사신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
이 복음에는 죄로부터의 해방, 율법의 계율로부터의 해방, ..... 과 같은 사안들이 있는데 궁극적인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위임 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자유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같이 되려는 인간에게는 자유가 없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생존의 자유를 잃게 된다. 이와 같이 동산을 지키는 직분을 떠난 인간에게는 자신을 지킬 자유마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몸을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살게 된 것이다. “누가 너에게 벗었다고 하더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아주 옹색하고 비참한 것이었다. 먹지 말라 한 과일을 먹었느냐 물었을 때 당신이 내게 준 하와가 먹으라고 해서.... 라고 했다. 얼마나 옹색한 대답인가?
자기에게는 먹을 자유가 없었다는 말인가? 그는 자유를 잃은 것이다. 있어야 할 영역을 잃었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아담은 단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다. 사명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사명을 떠나면 사명적 자유도 없어지고 살았다고 해도 실상은 죽은 것이다.
애기가 있을 때 엄마가 살아있고, 제자가 있을 때 선생은 살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여 인간영역을 떠나게 함으로서 인간의 자유를 유린하고 자신의 종을 삼은 것이다.
주인을 잃은 자는 남의 종이 된다.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너희를 종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일을 줌으로서 종을 삼는다. 사명을 이행하는 것 같은 일을 주고 종을 삼아서 인생을 유린한다.
사람들은 많은 생각과 일로 바쁘다. 세상에 있는 자들은 잃어버린 위치를 찾을 줄 알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하며, 유대인들은 의식과 계율로 인생을 가꾸며 산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일이라고 여기고 사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이 모든 헛된 것들을 끝내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바른 길을 열었다. 사단은 사람이 받은 사명 대신에 스스로 하나님 같이 되려고 발버둥 치게 하고 있으며 하나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과 상관도 없는 일로 인생을 낭비하게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밝히 너희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라고 강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 같이 되려고, 즉 자유자가 되려고 십자가를 피하다가 사단에게 걸려들어 그의 종이 된 것이 분명하다.
유대교는 의식과 계율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유하려 했으며, 또 그것이 자기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했고, 기독교 역시 교리와 제도에 충실하고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얻는다고 믿으며, 또한 그것이 교회를 지켜준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아니다!
교리나 제도가 자유를 주지 못하며 교회를 지켜주지 못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자유를 주고, 교회를 지켜 주며,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아내를 향해 자라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