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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얻음
본문: 갈2:1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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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얻음
갈2:11~
의로움이란 하나님께서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옳다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인정하심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라 하였다( ). 그러므로 율법을 잘 행하면 옳은 것이지만, 그 옳다 하는 것으로 아들은 믿지 않는다면 의롭다 할 수 없는 것이다( ).
율법은 하나님 마음과 생각을 천사들을 통하여 중보(선지자)의 손을 빌려 말과 글로 돌비에 새기고 종이에 써서 표현하고 백성과 계약을 맺어 선포한 것이며, 아들은 하나님의 마음(말씀)이 육체(사람)가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실제적인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온전한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믿고 잘 행한다면 결국 하나님 아들을 잘 믿고 따르는 것이지만 율법은 행하는데 아들은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쌍방 간에 계약한 율법의 요구를 위반하고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안다고 했지만 아들(인격)은 알지 못했고, 그 율법대로 행한다고 했지만 아들의 삶은 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율법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아는 것이며, 행한다는 것은 그 뜻대로, 즉 정해 주신 인격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알지 못하고 조문들만을 아는 것은 지식이며 인격으로 살지 않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자기 의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생명나무 열매는 하나님 생명의 열매이므로 먹으면 하나님 생명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율법을 알면 하나님 마음과 한마음이 되며, 믿으면 하나님 생명과 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믿음은 영접하는 것이다(believe in).
그런데 아담은 이 양식을 거절하고 지식이 되는 양식을 먹었으므로 이제는 무엇을 먹어도 다 지식이 되는 것이다. 양이 먹은 풀은 양고기, 소가 먹은 풀은 소고기가 된다.
그러므로 율법을 알아도 지식으로만 알게 되고, 행해도 외식으로만 행하게 되는 것이다. 외식이란 양이 소와 같은 모양으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럽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지식으로만 알고 생명으로는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대책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예수께서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리심을 받음으로 해결되었다.
하나님같은 일을 함으로 하나님같이 보인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아담이 하나님같이 되려고 행한 모든 것을 함께 매장시킨 것이다.
뛰어내리지 못하고 죽은 것은 정해진 육신-인생의 운명이며, 하나님같이 되려고 한 모든 노력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 안에 함축된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순종하는 것이지 지킨다고 해서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자고해져서 하나님같이 스스로 남을 판단하는 자가 된다면 그를 의롭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의롭게 되기에 가장 좋은 율법을 받았어도 결과는 정죄와 불의에 이르렀으니 이런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고(요3:15참) 인생의 원위치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구속을 받음).
위치를 이탈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다. 무엇을 어떻게 한다 해도 위치가 바르지 않기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길은 하나뿐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고 그에게로 돌아서는 것이다. 하나님같이 되려는 위치에서 사람같이 된 위치로 회복되어야 한다.
참사람은 누구인가?
아담 이후에 그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누구나 참사람의 위치를 보지 못했다. 성현들마다 옳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으나 그 기준이 적합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자연을, 어떤 이는 인륜과 도덕을, 또 어떤 이는 지혜를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근원으로 돌아감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한 답이 못 되었고 어렵고 길이 잘못 되었으므로 끝이 없었다.
만유가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은 당연하기 때문에 쉬운 것이다. 모두들 노력을 요구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힌 쉬게 하리라” 하셨다.
하늘과 땅이 생긴 이래로 이런 사람은 없었고 이런 복음은 없었던 것이다. 어느 성현이 무거운 짐을 벗겨주겠다고 했던가?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주지 않았던가?!
유일한 대책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 예수와 함께 죽었단 말인가? 그것이 사실인가?
바울은 예수를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대도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사람이면 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와 함께 죽었다고 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그와 같이 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분에게서 가장 완전하게 나 자신과 온 인류를 다 볼 수 있지 않는가? 무엇을 더 보고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가?
그를 보았으면 그가 나인 줄 알고 그가 내 운명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행함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는 그를 믿는다."고 하였다.
예수는 인류를 근본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온전한 구속자가 되셨고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얻고 의롭다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