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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아들 안에서 영생을 주심
본문: 갈3:26,4:1,7,요6:27~,딛1:2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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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아들 안에서 영생을 주심
갈3:26,4:1,7,요6:6:27~딛1:2
의는 아들을 통한 관계에서 주어지고 영생은 아들의 생명 안에서 주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위치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위치가 바르면 의롭다 하신다.
그런데 영생에 대해서는 바울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신실하신 그분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생을 주시려고 약속하셨다 (딛1:2)고 했고, 요한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요6:54) 했고, 혹은 있다고 했다.
의와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하는 영역(동산)을 지키고 경작하는 데 기본적인 필수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조건을 버리고 하나님같이 되려고 동산을 떠났으므로 동산의 문은 화염검으로 닫혀졌고 가시와 엉겅퀴가 앞을 가로막는 땅에서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하나님같이 되려고 힘을 다하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나타난 참사람이신데 그를 만난 증인들은 그의 삶에서 의와 영생을 보고 믿고 만지고 얻었다고 증거하였다.
의는 무엇인가?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위치와 관계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같이 되려는 것은 불의이고 인간으로서의 분수를 지키는 것은 의로운 것이다. 예수께서는 운명 직전에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울부짖었다고 했다. 끝까지 위치를 지켰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보좌 우편에 앉게 했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모든 통치는 이 사람에게 맡겨졌다는 것이다.
영생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는 끊어짐이 없는 삶이라고 한다.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삶과 소원을 표현하려는 말이다.
지고의 삶
그 지고의 삶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한 삶이다
영원 전부터 약속된 삶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이래서 문명은 쉼 없이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끝이 없다. 만족이 없는 것이다.
영생이 없기 때문이다. 왜 발전해도 만족이 없는 것인가? 아직 완성이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인가? 그렇다면 발전 중에 있는 만족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문명은 발전해도 만족지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영생으로 가는 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생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하고 있지만(창1:26참) 길이 빗나갔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정해 두신 영생의 길을 버리고 멸망의 길을 택한 것이다. (창2:17,3:6참)
산에 가야 범을 본다는 말이 있다. 영생은 있을 곳에 있고 있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시133:3참)
생명나무는 여호와의 동산에 있었고 영생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연합한 삶이다. 이 삶은 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딛1:2참)
또 영생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곳에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에 내림 같이 흐른다고 했다. 영생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연합한 삶이다(시133:3).
아담은 이 길을 보았지만 더 좋은 것을 얻어 보려고 길을 바꾸었다. 선악을 알면 하나님같이 된다는 그 멸망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하나님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으나 하나님은 되지 못하고 헛되이 인생을 소모하면서 죽음 저편에 영생이 있다고 스스로 위로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을 알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영생을 주심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중에도 가장 변방에서 고기나 잡아 생계를 꾸려가던 가난한 어부들에게 생각지 못했던 한 사람이 찾아왔고 생각지 못했던 한 새로운 삶을 준 것이다.
이 한 사람은 자신이 죽으면 만민이 영생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시고(요3:15참) 다시 살아나서 보지도, 듣지, 생각지도 못했던 영원한 삶을 주신 것이다.
제자들 안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삶이 일어났다. 충만하고 만족한 생명이 움튼 것이다. 전에 없던 삶, 창세 이후 없었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새 생명이 온 것이다.
이 후로 사도 요한은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요14:26참)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5) 증거했고,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요17:3)했으며,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요 3;3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라...” (6:40)하였다.
또 바울은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딛1:2). 하였다,
영생은 아들 안에 있는 연합의 삶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 이는 둘이 연합하여 완전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적으로 완전하시나 그 완전하심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연합이 필요하다. 사람과 연합하여 완전한 삶을 사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는 여자와 연합할 때 완전한 삶, 즉 자식을 낳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과 연합하므로 완전한 삶으로서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연합을 위해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받으시고 영생을 위해 부활하셨다. 부활은 새 생명이요 영생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한 삶으로서 “참(실재) 하나님이시오 영생(삶)”이시다(1요5:20).
바울은
영생은 거짓이 없는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므로 “영생을 취하라” (딤전6:12)했고,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요6:47)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51)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니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3~58)
영생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한 삶이며 이 삶은 영생이신 예수 안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그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가 있는 그 인격에서 영원한 삶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고 영생을 살려면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신 예수와 연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