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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약속 안에서 자유
본문: 갈4:21~5:1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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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약속 안에서 자유
(갈4:21~5:1)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약속과 언약이 있는데 먼저 약속하시고 다음에 언약을 맺으셨다.
약속은 일방적 선포이므로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시는 일이며 언약은 계약이므로 쌍무적이다.
사람 지으실 것을 먼저 약속하시고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으며, 생기를 불어넣어 산 혼이 되게 하시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여,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각종 나무가 나게 하셨는데 거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고 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스스로 행하셨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이것은 약속이 아닌 언약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행하셨으나 사람은 언약을 맺고 그것을 어겼다. 그러므로 정해진 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징벌은 죽으리라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이며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인간은 아무도 통제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중에서 하나님 백성을 삼으려고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훈육하려고 율법을 주시고 그 법으로 통제하셨으므로 그 아래 갇히게 된 것이다. 법은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에게 준 것이므로 법 아래서 자유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들이 자유하게 하면 참으로 (율법에서) 자유하리라 하셨고,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유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자유를 주셨기에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였는가?
율법은 계약이므로 의무가 있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 의무를 지켜야 한다. 소는 일하는데 힘이 들지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소는 죽기 전에 이 멍에를 벗을 수 없고 인간은 죽기 전에 율법의 멍에를 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면 이 멍에(율법)를 받아야 하고, 포기하면 멍에(율법)는 없지만 야만이 됨으로 자기 스스로 자기를 저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가?
바울은 믿는 자의 자유에 대하여 말하면서 두 아들에 대한 비유를 들었다.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은 의무가 없으므로 자유자이지마는 계약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은 의무가 있으므로 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사라는 약속으로 아들을 얻었고 하갈은 법에 따라 아들을 얻었다.
합법적으로 이탈한 인간을 같은 법으로는 구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을 주신 것이다.
구원의 줄로, 생명선으로 약속을 주신 것이다. 아벨 대신에 셋을, 네피림 대신에 노아를, 바벨 대신에 아브람을 부르시고, 천하 만민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하시고 이스마엘 대신에 이삭을 주시고 약속의 자녀로서 영원한 후사라 하였으며 결혼하지 아니한 마리아에게 아들을 주시고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예수는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다. 이들은 다 약속의 자녀들이다.
계약은 창조에 속한 육체와 관계됨으로 제한이 있으나 약속으로 주신 아들은 영에 속한 아들들이므로 제한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자유가 있다.
또한 법은 이탈한 인간(육체)에게 주신 것이다. 다시 난 자들에게는 새로운 법으로서 은혜의 법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생명이며 생명 안에는 은혜의 영의 법이 있다. 그러므로 이 법은 생명의 영의 법이다(롬8:1~참). 생명의 영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율법)에서 새 생명으로 사는 자들을 율법으로부터 해방한다.
십자가는 육체 안에 있는 인생을 끝냈으며, 이탈한 인간을 폭로하고, 새 생명을 가져왔다. 이 생명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오로지 생명의 영의 법이 운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