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새 언약(1)
본문: 히1:1~14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히 1:1~14
-
말씀 요약
새 언약(1)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권의 책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렇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새 언약이 왔기 때문에 분류해 놓은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열 말씀을 두 돌판에 새겨 주셨고 모세는 그의 뜻을 따라서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율법을 선포하고 백성이 다 약속하여 피를 뿌리고 언약을 맺었다. 이것을 옛 언약이라 한다.
돌비에 새겨진 말씀은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식되었고 그 인식 안에서 그는 열 말씀을 율법으로 선포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법이요 말씀이라고 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법을 지키지 못하고 망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열심을 다해서 지켰으나 “이 백성이 마음은 내게서 멀다.” 하신 것 같이 마음에 없는 것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다.
이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고 하셨다. '내 법'이라고 한 이 법은 말씀이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마음이다(요1:1참).
율법은 하나님 마음이다. 이것을 주신 목표는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되어 함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지키지 못하므로 옛 언약을 대신하여 지킬 수 있는 새 언약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 언약을 세우신 목표 또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언약은 예레미야로 예언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자기 피로 세우신다 하셨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성취하셨다.
한 알의 씨가 창조된 것이다. 이 씨는 만민에게 유증될 생명으로서 새 언약의 완성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새 언약의 중심이요 생명이다.
요한은 그를 보고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 하였고, 바울을 이 법이 먹으로 종이에 쓴 것이 아니고 영으로 심비에 새겨졌다고 하였다. 먼저는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고 다음에는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새 언약은 놀라운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 고작해야 선각자들은 후인들에게 그들의 깨달음을 교육하고 훈련 시킬 뿐이었는데 여호와께서는 약속하셨고(렘31:31) 예수께서는 자기 피로 언약을 세우고 성취하신 것이다( ).
약속은 전적으로 자비와 은혜에서 나온 것이므로 혹은 취소될 수도 있으나 언약은 맹세로서 유언과 같기 때문에 취소될 수 없는 것이다. 취소한다면 명예와 공의가 손상을 받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골고다의 십자가에 이르렀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은 왜 그를 거기까지 이끌었는가? 왜 피를 흘리게 하였는가?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먼저 죄를 처리해야 하고 그 죄를 처리하려면 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였고 그 백성의 믿음이었다.
그래서 옛 언약을 세울 때에도 피를 뿌렸고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속죄제의 피를 흘려야 했던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다.
피는 왜 필요한가? 하나는 맹세를 위해서, 또 다른 하나는 죄 사함을 위해서다. 피에 관계된 구절은 모두 죄 사함과 관계되었다. 새 언약 역시 피로 세워졌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죄를 사하는 언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으로서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다. 죄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요인이요 핵심이다. 이것을 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라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죄는 무엇인가? 지음 받은 아담은 죄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같이 된다는 말을 먹고 하나님같이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이 아담의 생명이 된 죄요 죄인의 생명이다.
아담은 선악을 아는 일에는 하나님같이 되었다. 그러나 능력은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아담은 능력이 부족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다.
선악을 아는 일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는 일에는 하나님같이 되었으나 능력은 없는 것이다. 사단은 지식은 주고 능력은 주지 못한 것이다.
그런즉 이 사람을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는 너희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하셨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다.
죄가 생명이 된 사람은 고칠 수가 없다. 먹었다는 것은 생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생명은 바꾸지 않으면 길이 없다. 여호와께서는 죽은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다고 했다. 가인을 고치지 않았으며 아벨을 다시 살리지 않았다. 대신에 셋을 주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담을 끝내기 위해서 가인을 통해서 아벨을 죽이고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하였고 아벨 대신에 셋을 주신 것이다.
주 예수님도 아벨의 입장에서는 가인에게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로 새 생명을 가져오신 것이다. 하나님 같이 된 아담을 처리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영원히 동일하다. 끝내고 새것을 주시는 것이다.
새 언약은 예수의 피로 세워졌다. 즉 죽으심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수를 주목해야 한다.
끝나신 분을 보고 자신도 끝났음을 알아야 하고, 부활하신 분을 보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야 한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은 다시는 죄에 매이지 말고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였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다시 사심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새것이며 전에 없던 것으로서 타고난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다. 비록 죄를 범한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아담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말씀-생명이 육신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구속 받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으로 뿌려지고 새 영으로 부어진다.
예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그와 하나됨으로 동행하고 함께하며, 창조자와 피조물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동산지기에서 배필로 성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