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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영원히 동일하신 예수
본문: 히13:8,9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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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영원히 동일하신 예수
(히13:8,9)
영원한 예수의 구속
변하고 쇠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여호와는 변하지 않고 영원히 통치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믿음을 지탱하게 해주는 기둥과도 같은 말씀이다.
보이지 않는 여호와가 영원한지, 않은지를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헬라인들 같으면 창조주라면, 절대자라면, 이치로 보아서 당연히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생각에 의존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받은 은혜로 이것을 증거한 것이다. 전에도 은혜를 주셨는데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내일도 그럴 것이며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역사를 우연이냐 필연이냐, 재수냐 악수냐, 누가 강하냐 약하냐하는 데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에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은혜의 흘러내림을 보고 그 은혜가 영원하니까 그 은혜를 주시는 여호와도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임을 당했으나 영으로는 다시 살리심을 받아서(벧전3:18참) 우리 구속이 되셨고, 새 인류를 위한 구속자로서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살아 계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다. 바울이 받은 때가 언제인가? 그런데 지금 나도, 우리도, 모두 다 꼭 같이 그 은혜의 구속을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살아 계셔서 우리 구속함이 되신다. 천지가 변할지라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로서 나왔기 때문이다(고전1:30보).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던 것도 변하고,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시던 것도 변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뛰어내리지 못하고 죽으신 것은 변하지 않았다.
사탄은 이 사실을 역사의 한 편으로 돌리고 사랑과 은혜와 희생과 같은 그럴듯한 것들만 부각을 시켰고 또 다른 면으로는 기사와 이적을 재현함으로써 예수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있다고 증거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제쳐버린 것이다.
그들에 의해서 증거된 예수의 십자가의 효능은 사람이 그의 생활은 본받아서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교훈이고, 그 영은 현재적으로 이적을 행함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여러 종교들에 널려 있고 특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 변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구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그의 죽으심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구속은 인간 본래 위치를 되찾은 것이다. 이 위치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손바닥을 보듯이 선명하게 사람이 무엇인가 ,그 위치가 어디인가가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사단은 이 위치를 감추기 위해서 십자가의 효능을 왜곡시키고 인간이 좋아하는 것들로 포장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아직도 도를 구한다는 사람들 견성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실재를 찾는다는 사람들 모두 다 나는 누구냐? 나는 무엇이냐? 하고 찾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면 불을 보든 빤한 것을 제쳐 버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자기를 찾는다는 망언만 하고 있는 것이다.
더 고상한 자기를 찾아보려고, 더 위대한 자아를 세워 보려고, 더 아름다운 자기를 꾸며 보려고......... 다 아담이 말한 대로 두려워서 숨어 있으면서 그 자리에서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아담은 변명뿐이다. 진실은 조금도 없다. 위치가 이탈되었으니 진실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인간을 보시고 어이가 없어서 웃으신다 하였다(시2:4보).
예수의 진실은 그의 변치 못할 위치에서 나온 것이므로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도 있는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나 따뜻하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나 차다. 위치가 그 사람의 진실을 보증하는 것이다.
예수의 위치, 그 얼마나 진실하고 변치 못할 위치인가! 그 위치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쳤고, 위치에서 베드로를 꾸짖었으며, 그 위치에서 빌라도의 심문을 받았고, 대제사상의 심문을 받았으며, 그 위치에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의 일생에서 남은 것은 그의 위치뿐이다.
그러나 그의 위치는 하나님이 정한 위치로서 변할 수 없는 위치이고 인간은 누구나 다 그의 위치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된 사람으로서 살아나는 것이다.
이 위치는 변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죄 사함(구속)도 변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화목도 변하지 않는다.
그는 십자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셨다. 아무 이적도 행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그의 위치는 변하지 않으므로 그의 구속도 변하지 않으며,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그와 함께 살아 있는 것이다.
다른 교훈에 끌려가지 말것
그러므로 다른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9). 당시에는 율법의 계율이나 종교적 습관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때였으므로 그런 것들이 십자가의 효능을 제치고 왜곡시켰다고 한다(갈3:1~보).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가? 기독교의 전통, 교리, 의식,....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십자가의 효능은 가려지고 왜곡되고 흐려진 것이다.
다른 면으로 보면 십자가가 정확하게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득세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시대를 지난 교회는 시대적 상황에 끌려 국교화의 길로 갔고, 그 길에서 당연히 황제나 교황에게 어울리는 종교가 만들어졌는데 이 때에 구속을 위한 예수의 십자가는 거침돌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인간 미덕을 산출하고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전락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인류 구속을 위해서 동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른 복음은 없다. 그러므로 다른 교훈에 끌려가면 안 된다.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