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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예수로 말미암는 영원한 찬양(감사)을 드림
본문: 히13:14~15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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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예수로 말미암는 영원한 찬양(감사)을 드림
(히13:14,15.)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로지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하였다.
찬미의 제사란 감사의 제사라 할 수 있다. 제사 중에는 속죄의 제사도 있고 감사의 제사도 있다. 찬미의 제사는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표시인 것이다. 이는 또 행복의 표출이기도 하다.
사람은 행복하면 찬송하고 불행하면 원망한다. 그러므로 최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최고로 복 있는 사람이며, 최고의 원망을 하나님께 토하는 사람은 최고로 불행한 사람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면서 행복하면 찬양하고, 불행하면 원망했다. 광야는 수시로 변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찬양과 원망을 되풀이하다가 사십 년의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세상은 광야와 같다. 영구한 것이 없는 곳이다. 예루살렘 성은 한때 영광의 성이었고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이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있고 대제사장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류를 구속할 그리스도를 내쳐버린 성이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가 마련해 주신 동산을 떠났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에게 속한 영원한 것도 다 함께 잃은 것이다.
동산(거처)을 잃었고, 사람의 격(인격), 즉 그 위치를 잃었으며, 그 정체성을 잃었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성을 쌓아 거처를 만들고 힘을 행사하려 하며, 내적으로는 선, 의, 지혜 같은 것들로 무장하여 홀로 완전해져서 하나님과 맞서려고 자기들의 구속자를 버린 것이다(요1:9~13참,19:15~보).
그런즉 그 영문 안에서 어찌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그 성을 떠나서 예수 계신 곳으로 나와야 하며,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영구한 거처(동산)도 없고, 진실한 인격도 없다. 그러므로 영구한 감사와 찬양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성은 강포해지고 낡아지며 부패하고, 위치를 잃은 인간은 자기의 격이 없고 정체성이 없으므로 방황하고 원망하며 변명만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는 존재와 위치가 감사와 찬양을 위해서 있다. 아담은 이 귀중한 위치, 이 존귀한 존재를 사단에게 유린당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같아지려고 한다. 하지만 위치를 잃었으므로 만족이 없고 만족이 없으므로 원망을 한다.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나무 뒤에 자기를 숨기고 변명만 하고 있는 것이다(창3:8~보). 그에게는 찬양이 있을 수 없다.
또 하나님에게 택함 받은 이스라엘도 감사와 불평을 반복했다. 왜 그런가? 택함을 받고 은혜를 입었으나 아직 구속이 없어서 인격이 회복 되지 못했으므로 감사와 찬양이 온전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자신들도 혼란스러웠고 이방인들에게는 깊은 상처와 저주를 심은 것이다. 그들의 찬양은 이방인들에게 저주를 뒤집어씌우는 것이 되었다. 온전치 못했다. 사자들이 많아지면 더 많은 동물들이 희생을 당하게 되는 것과 같다.
아담은 자신에게 부여된 모든 참된 축복을 다 잃었다. 그러므로 참된 찬양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은혜를 입고 축복을 받은, 바로 그것을 가지고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을 저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안에 참된 찬양과 축복이 있음
그 악기에 그 소리가 나는 것이다. 아담으로 말미암으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며, 거기에 종교를 더하게 되면 자기 좋은 것으로 오히려 남을 저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에게는 온전한 것이 없다. “하나님같이 된다.” 는 말에 자기 혼을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우주 안에 사람이 하나님같이 된다는 말보다 더 거짓된 말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말에 속았으므로 사단과 함께 거짓되고 온전하지 못한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같이 되려 하는 인생에 언제 감사와 찬양이 있으랴?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해도 여전히 불만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자기 위치가 진실해져야 비로소 할 일을 하게 되고 만족이 오는 것이다.
우리의 구속자 예수는 참되시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사단과 그의 말을 거부하고 사람의 위치를 지킴으로 참된 자로서 우리의 구속자가 되셨다. 그는 존재가 진실하므로 모든 것이 다 참되다. (1요5:20,마4:1~,26:42,27:40,46참).
그러므로 그의 찬양과 제사만이 참되고 흠이 없으며 영원하고, 그로 말미암아 구속 받은 생명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온전하여 축복이 만유에 퍼지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며 예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이유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사람은 완전하게 지음 받은 축복 받은 피조물이다. 사람을 지으신 이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배려하셨다. 사람이 기계를 만들어도 결점이 없게 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만물을 창조하신 이가 자신의 목적을 두고 창조한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었겠는가? 더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대신하게 하기 위하여 지은 인간을 부족하게 만들었겠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으신 사람을 보시고 “심히 좋다”(창1:31) 하셨다. 그런데 왜 부족하고 불완전해서 불평불만이 생겼는가? 사람이 하나님 같이 되려하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날려고 한다면 모든 것이 불완전할 것이다. 이 이유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인생은 감사와 찬송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이에 대한 해답을 보여 준다. 인생이 무엇인가? 하나님 같이 될 자인가? 사람이 될 자인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역력하게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이 사람을 보라”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 안에서 항상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양의 제물을 드려야 한다. 아멘.
말씀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때를 정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름을 지어 주신 분께 감사하고, 흙을 빚어 주신 분께 감사하며, 생명나무를 주신 분께 감사하고, 동산을 지키게 하신 분께 감사하며, 배필로 삼아 주신 분께 감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