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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주님이 오실 때까지 선포함
본문: 고전11:23~27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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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선포함
고전11:23~27
시원(始原)적인 언약은 아담에게, 종족에 대한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민족에 대한 언약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
그러나 모두 다 목적지를 향해가는 과정이었고, 언약의 결정(結晶)으로서 새 언약은 예수께서 말씀이 육체가 되심으로 친히 표본(씨)이 되시고 표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 온 인류에게 주어졌다.
이 언약(새 언약)의 결정은 예수의 죽고 다시 사심을 통해 성취되었고, 사도들을 통하여 전파됨으로 교회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의 죽으심을 그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선포해야 한다.
새 언약은 주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죽으심은 옛것 모두를 끝낼 뿐 아니라 새것을 가져오는 길이 되고 생명이 된다.
옛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따를 수 없게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아담은 분명히 먹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으나 사단에게 끌려갔고 이스라엘도 백성이 되게 하는 말씀을 듣고 동의 하였으나 지킬 수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생명 안에 하나님 말씀을 따를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이 인간의 위치를 이탈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만유에게 분배하기 위하여 그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이 이탈하면 자신은 하나님 생명줄에서 끊어지고, 공급을 받을 수 없게 되며, 만유는 천사들이 이탈했을 때와 같이 목표를 잃게 되고 우주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되는 것이다. (창1:2참)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만유를 포함한 죽음이 필요했고 예수는 그 유월절 희생양이 되신 것이다.
애급에 노예 된 이스라엘은 그 양의 죽음으로 바로의 손에서 해방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와 같이 사단에게 노예 된 인류는 예수, 그 양의 죽으심으로 해방되어 새 생명을 얻고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아담은 속았다. 하나님 같이 될 줄 알고 속은 것이다. 그래서 위치를 잃은 것이다. 이것이 인생문제의 본질이고 근원이다. 능력이 없음도 아니고 지혜가 없음도 아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은 하나님 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죽음으로 증거하고 인생의 생명과 위치를 회복하셨다. 위치를 회복했을 뿐 아니라 더 강화 된 부활생명과 더 높여진 보좌 우편의 위치를 얻었다.
아담의 생명으로는 사단을 이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예수 생명은 부활과 보좌를 얻은 더 귀한, 다시는 패배할 수가 없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돌로 떡을 만들 수 없는 인생으로 유혹하는 자를 물리치셨고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인생으로 구속을 이루셨다(인권회복).
얼마나 당연하고 쉬운가! 당연하기 때문에 그의 짐은 가볍고 쉬운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은 억지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라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마11:28) 하셨다.
문은 열려졌다. 만유에게 문이 열려진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바른 위치회복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롬5:19참) 하나님과 연합할 문이 열려진 것이다. 조건 없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열렸다. 할렐루야!
죄는 위치를 이탈한 것이며 의는 바른 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사망-단절(저주)은 죄(이탈)로 인하여 온 것이고 생명-연합(축복)은 의로 인하여 온다.
단절은 연결 되고 연합은 이루어졌다. 수도관이 연결 되니 물이 나온다. 전선이 연결 되니 전기가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흐른다.
또한 이 회복은 유혹을 받았던 아담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담은 유혹을 받을 가능성을 가기고 지음 받은 사람이다. 밭이 어떤 씨든지 받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거친 위치는 하나님의 생명 외에는 받을 수 없는 위치로 바꿔진 것이다. 새 예루살렘의 성문은 모두 진주 문이다. 문 자체가 승리인 것이다. 십자가를 거친 것은 다 승리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승리자가 되는가?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셨다” (고전1:30) 하였다.
눈을 뜨고 보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안에 인생, 즉 자기 자신이 있지 않는가?
우리는 예수 안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안에, 십자가를 통과한 예수 안에, 그 인격 안에 포함 되어 있는 것이다.
못 박힌 사람과 부활한 사람은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못 박힌 사람 안에 포함 된다면 부활한 사람 안에도 포함 되는 것이다.
멸시 받고 버림받은 그 인격 안에 사단을 이기는 비밀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사단은 무슨 능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존재다. 다만 그 인격으로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단은 선악을 아는 지식을 먹이고 그 인격을 무시하고 버리도록 유혹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인격을 지키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새 생명을 가져왔다. 하나님에게는 이 인격이 필요하다. 돌로 떡을 만들지 못하는 인격,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는 그 인격이 필요한 것이다. 배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그의 죽으심은 이 인격을 증거 한다. 그러므로 그의 죽으심을 그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영광을 받으실 때까지 선포하고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