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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두 아들(이삭과 이스마엘)
본문: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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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29.두 아들(이삭과 이스마엘)
동산에는 두 나무가 있었고 아담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아브라함도 두 아들을 낳았다. 이삭은 사라에게서, 이스마엘은 하갈에게서 얻었다
바울은 이 사건을 은혜의 길과 육법의 길로, 자유자의 길과 종의 길로 해석했다. 나는 오늘 이 사건을 생명이 길과 지식의 길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얻은 첫째 아들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후 10년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자 기르고 있는 종을 입양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이다” 하였고, 아브람은 여호와를 믿었음으로 이것을 그의 의로 여겼다고 한다.(창15:1~4참)
그리고 또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는데 이번에는 사라가 그의 여종 애급여자 하갈을 아내로 맞아들이라 하여 그녀에게서 이스마엘을 얻게 되었다.
관습적으로 당연했고, 사정이 당연했으며, 둘이 한 마음이 되었으니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고 그 결과였던 것이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고 하갈은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후사를 주시겠다고 하신 분의 뜻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무런 계시가 없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으며 두 여자들 판에서 아브라함은 고통뿐이었던 것이다. 13년 동안 그 집안에는 어둠 뿐 이였을 것이다.
세월은 그냥 지나갔고 아브라함 100세, 사라 99세가 되었는데 그 때 갑자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통보했다.
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느냐 했고 사라는 장막 뒤에서 웃었다고 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약속대로 아들을 주셨고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하셨다. 두 아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에 아브라함의 힘을 더한 것이고 이삭은 순수하게 하나님의 자녀였다는 것이다. 생명의 순수성에 관한 문제였다.
아브라함은 아브람이라는 사람이었으나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받은 사람이었다. 즉, 귀한 자라는 개인적인 이름에서 만민의 아버지라는 단체적인 이름으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한 민족의 아버지로서,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아버지로서의 사명이 주어졌던 사람이다.
이름은 그 사람을 의미 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은 그 자신의 어떠하심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믿음에 이름이 바뀌었고, 그 이름에 합당한 축복도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아들은 섞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생명에는 무엇보다도 순수성이 필요하다.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 열매를 먹었음으로 위치를 이탈했고 그 이름의 순수성을 잃었다.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 대신에 지식이 들어온 것이다.
아담은 이 지식으로 생명의 주를 죽인 것이다.(행3:15) 이스마엘은 큰 민족이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대적이 된 것이다.(시83:6참) 오늘날에도 한가지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백성 안에 섞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구속의 주, 생명의 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벨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우리의 구속 주, 생명의 주는 십자가에 못 박혀 내려오지 못하신 이, 예수와 연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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