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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벧엘의 하나님(2)
본문: 창35장
설교자: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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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42.벧엘의 하나님(2)
가. 집을 얻음
벧엘로 돌아온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거처 (그 내 집)를 얻었다. 그는 지난 세월 집이 없는 떠돌이였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소원했던 집을 얻은 것이다. 엘 벧엘, 하나님의 집에 살게 된 것이다.
가) 모든 우상을 버림
야곱은 벧엘로 돌아가기 위해 우상들을 버렸다. 우상들을 가지고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람에서의 20년 동안에는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우상을 숭배한다.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은 어쩔 수가 없다. 빈 병이란 없다. 공기가 들어가도 들어간다.
사람은 그냥 비워져 있을 수가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비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다른 것이 또 채워진다. 아람은 외삼촌의 사는 곳이었으나 이방 땅이다. 이방에 살면 사람은 하나님 대신에 우상들로 채워진다.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살아서는 하나님으로 충만했고 죽으심에서는 사람으로 충만했다. 다른 것, 즉 우상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영과 생명이신 하나님과 그를 내용으로 살아 갈 형상으로서의 사람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없다. 야곱은 이방에서 아내들을 얻었음으로 온 집안사람들은 각종 우상들로 점유되어 있었던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상들을 버려야 했다. 우상이란 하나님을 대신하는 모든 것들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우상이 없는 것이 깨끗한 것이고 거룩한 것이다.
나) 단을 쌓음(35: )
고향을 떠나 객지로 갈 때 위로와 격려를 받았던 그 돌을 생각하고 단을 쌓지 않았을까? 잊을 수 없는 그 돌, 외로운 야곱에게 유일한 위로와 격려였던 그 돌베개,.......
야곱은 다시 생각이 났을까? 아니면 외로울 때마다 늘 생각이 났을까? 그 돌 베게는 성소의 법궤처럼 늘 안식을 주지 않았을까? 시은 소, 속죄소, 비로소 하나님과 화해가 되는, 모든 죄와 허물과 염려와 고통이 원인 무효 되는 그 돌베개 ........
그 베개를 생각하고 단을 쌓았을 것 같다.
단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기반이다. 여호와에게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단 위에 드려야 한다. 단이 없는 예물은 무의미하다.
가인과 아벨은 단이 없이 제물을 드렸다가 결국엔 싸움이 일어났고, 고라 자손들은 다른 불로 향단의 불을 지폈기에 하루에 250명이 죽었던 것이다.(민26:10참)
자기의 단이 있어야 하고 그 단 위에 드려야 한다. 자기 단은 받을 자와의 관계에서 자기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막에 들어가는 처음 조건은 번제 단이다. 단이 없는 만남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항상 새롭게 해 주는 것은 나의 첫 자리, 그 돌배게다. 나의 단을 언제나 그 돌베개 위에 쌓아진다. 사방이 막혔을 때 나를 숨 쉬게 해 주었던 그 돌 위에 단을 쌓고..... 그 위에 전제와 기름을 붓는다. 그러면 언제나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내 집을 얻게 된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내 집, 야곱이 소원했던 그 집은 얻게 되는 것이다.
처자식을 많이 얻었어도 야곱에게는 내 집, 그 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벧엘로 돌아와서 단을 쌓고 그 집을 얻은 것이다.
엘 벧엘의 하나님은 곧 내 집이 되시는 하나남이시다. 그 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이면서 내가 사는 동산이다. 단을 쌓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집은 곧 나의 집인 것이다.
다) 제물 위에 전제물과 기름을 부음
전제물(술)은 기쁨을, 기름은 풍요를 상징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곧 나의 기쁨이고 나의 기쁨이 곧 하나님의 기쁨이다. 그의 풍요함이 나의 풍요함이고, 나의 풍요함이 곧 그의 풍요함이다.
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나는 내 그 돌베개위에 주님을 위한 단을 쌓고 전제물(술)을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다.
그러면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그의 풍요가 곧 내 풍요가 된다. 그 잃었던 동산이 회복 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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