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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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회는>
대구교회는 1977년 봄, 한국 대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현래 목사는 1975년 충주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전파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주의 이끄심 안에서 지극히 당연한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의 사역에 큰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은 완전하지만 사람의 인격만큼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아는 데 있어 성경지식보다는 인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기 위해 다루시고 깨끗케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손으로 나를 고치고 개선하려는 수고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셋째, 생명은 씨로 말미암아 자라나듯이, 교회는 주님이 생명이 되시어 자신을 공급하심으로 나타내어짐을 깨닫고, 생명의 씨를 뿌리는 일 외에 교회를 만들려고 달리 애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넷째,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목적은 놀라운 일이나 위대한 사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신부가 되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사역자로서 일생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를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사는 것 외에 다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현황>
대구교회는 학생들 몇 명이 모여서 성경 말씀을 듣다가 차차 사람이 많아져서 교회라고 이름하게 되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청사진을 먼저 놓고 시작했던 것이 아닙니다. 또 틀이 정해진 교단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모양을 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그때그때마다 집회가 기대가 되고 새롭고 신기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나면 간증이 어떻게 흐를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대에 차 있게 됩니다. 이현래 목사님은 늘 “주의 손에 이끌려” 하나님 하시는 일을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위적으로 각본을 짜서 집회를 이끌어간다면 성령께서는 언제 일하시며, 생명은 어떻게 흐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는 한 사람이라도 말씀을 구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 말씀을 전하신 결과, 각처에 가족같이 친밀한 관계로 모인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해외나 먼 곳으로 이사 간 교회 형제자매들로 인해 각처에서 동일한 생명으로 교통하는 모임들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각처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을 그 지역의 이름을 붙여 ‘ㅇㅇ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배>
대구교회의 예배 형태는 오직 주 예수님이 우리 존재와 삶을 통해 나타나심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형식들이 사라지고 꼭 남을 것, 말씀 듣고 교통하는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위적인 틀이 없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흘러가고, 우리의 존재와 삶이 예배가 되는 그런 형태의 예배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 작은 ‘순모임(소모임)’들을 통해 누구라도 자신에게 주신 은혜의 분량만큼 이해와 경험을 나누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누구도 소외됨이 없도록 교통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일은 특별한 사역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이며,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직분과 제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일은 각자 자신에게 주신 은혜와 생명의 분량만큼 해야 기쁨이 있고 수고로움과 다툼이 없게 됩니다. 생명이 성숙하면 그 성숙한 만큼의 일이 보이게 되고, 일이 보이는 사람이 그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구교회는 인위적으로 직임을 임명하지 않고 생명의 분량만큼 스스로 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돌로 만든 집에 거하실 수 없고,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으셔서 살아 있는 인격 속에 거처를 삼으셔야 했던 것처럼(행7:48), 인위적인 제도와 직분은 하나님의 자유하심과 생명의 유연함을 나타내기 어렵습니다. 오직 사람됨이 일의 방법이고 일의 수준입니다. 그래서 대구교회는 인위적인 조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대하여>
교회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1:23, 행20:28).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로 배필인 여자를 만드셨듯이, 교회는 ‘십자가’, 곧 예수께서 ‘옆구리에서 흘린 피’로 조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식이나 이념, 교리나 제도로 건축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난 생명으로만 건축됩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택정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흠 없는 정결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케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5:26) 라는 말씀처럼, 주의 몸인 교회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되신 주님의 어떠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과 본성을 공급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게 합니다. 교회는 현재적으로는 주님의 몸이고, 장차 올 새 예루살렘이며,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두실 그의 형상으로서 인류의 최종적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