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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7월 29일
제목: 4.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경륜(2)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
성경 본문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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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신성한 경륜의 흐름
4.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경륜
a) 생명나무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은 생명의 표현이다. 그 생명이 그 나무로 표현된 것이다. 나무의 생명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살아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다고 한다. 생명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결과만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여호와는 어디 계신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무를 보면 그 생명을 본 것이다(요14:9참). 생명나무는 생명이신 하나님의 표현이다.
생명나무는 여호와께서 지으신 사람을 위해 동산 안에 두셨다고 했다. 이 나무는 생명이신 하나님의 표현으로서 그 생명을 사람들에게 분배하기 위한 수단이다.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는 생명이신 자기 자신을 그 나무를 통해 열매로서 공급하시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농부이시고 그 나무는 농부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농부의 목적에 참여하고 농부이신 하나님을 알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하셨다(요15:1). 포도나무는 농부가 심은 것이며 가꾼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자신은 아버지의 표현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연하여“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제자들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말씀하셨다. 농부와 나무와 가지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의 유기적인 생명관계를 설명한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찾는 제자들에게“나를 본 자는 내 아버지를 본 것이라”(요14:7,8) 하였다.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는 그것을 거기 두신 여호와의 표현이다. 이와 같이 아들은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아는 것이며 그 열매를 먹음으로 아버지의 생명을 받는다. 그러므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다고 하였다(1요5:12참).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임을 보았다. 그는 산 자시다(눅24:5참). 그러므로 그는 산 자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표현으로서 동산에 두신 생명나무시다. 아담은 이 나무를 보고 그 열매를 먹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이 열매를 거절하고 선악과를 먹고 동산을 떠나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한 바벨을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동산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나무로서 그 열매를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다. 그 생명나무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되기 위해서 우리와 같은 육체 안에서 죽으심과 부활의 과정을 거치셨다.
나무가 열매를 생산하려면 자신의 몸을 통해 죽음과 삶을 반복하면서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 생명나무이신 예수께서도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되기 위하여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하셨다(요14:16참).
이 열매는 하나님의 동산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때를 따라 공급되는 양식으로서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이 인격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정해주신 인격에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더함으로써 만민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된 그 영이다.
아담은 동산에서 생명나무를 보았으나 먹지 못했다. 왜 먹지 못했을까? 하나님을 표현하는 인격이“볼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흠모할 만한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사53장, 막14:36,15:34,요19:34참). 그러나 제자들이 다시 만난 부활하신 주님은 그 인격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이었다(행7:55,56참).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게 되신 것이다.
육체이신 그분 안에 있는 인격,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인격은 감당할 수 없었지만 부활하신 후에는 호흡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기같은 그 영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숨을 내쉬시면서 그 영을 받으라 하셨다.
감추었던 생명나무는 열매로서 오늘 그 영의 형태로 분배되고 있다. 그 영은 과정을 거친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생명나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이 생명을 다시 받아야 한다.
이 인격은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의 중심이다. 이 인격 안에서 아담을 창조하셨고 이 인격 안에 자신의 생명을 분배하여 생명으로 연합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대신하게 하려고 동산을 창설하여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생명나무를 양식으로 주신 것이다.
동산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한 곳이고 생명나무는 자신의 생명 분배를 위한 방법이었다. 아담은 완전하게 지음 받았으나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산 혼이다. 산 혼은 밭과 같고 빈 그릇과 같다.
밭은 씨를 받기에 따라서 과일을 생산하기도 하고 곡물을 생산하기도 한다. 스스로는 씨를 키워낼 능력은 있지만 어떤 종류의 생명도 없다. 또한 그릇 역시 무엇이나 담을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은 없지만 생명을 살려내는 탁월한 기능을 가진 산 혼이다. 이것이 창조자가 정해주신 인격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이 인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아담은 여호와를 생명으로 받으려 하지 않고 지식으로 생명을 대치하려고 선악을 아는 나무를 취하고 동산을 잃었다. 그러므로 이런 아담의 세계에는 생명나무는 감추어진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로 오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간에 다시 생명의 통로가 열리게 되었고 신성한 경륜은 이 생명을 통해서 다시 열리게 되었다. 동산의 생명나무는 오늘 부활하신 그리스도시고 그 열매는 교회 안에 주어지는 생명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