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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8월 18일
제목: 6.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신성한 경륜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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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신성한 경륜의 흐름
6.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신성한 경륜
사람은 누구나 한번 나서 한번 죽는다(히9:27). 사람만이 아니다 만물이 다 그렇다. 그렇다면 이것은 창조 안에 이미 정해진 일이다. 그러면 여기에 무슨 신성한 경륜이 있는가?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고 또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삶을 연장해 보려고, 죽음을 제거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헛된 수고뿐이었다. 죽음은 움직일 수 없도록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요3:15) 했으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요12“24) 하셨고, 사도들은“예수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자기를 단번에 드리셨다”(히9:28)고 했으며, “ 우리가 그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골1:14,엡1:7). 고 했다.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하여 그는 친히 죽음을 맛보시고(히2:9)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히2:15)하셨다는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정해진 것이다. 이 안에서 보면 죽음은 새로운 번식의 경륜을 위해 정해진 것이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장수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자식을 낳고 죽었다고 했다. 그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오래 살면서 자식을 낳고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차적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죽음 안에 있는 자들을 살려내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죽으셨고,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구속 곧 죄 사함을 얻고 새 생명의 번식을 위한 부활에 참여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신 것이다.
a. 한 알의 밀알로서 생명의 번식을 위해 죽으심
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번식시켜야 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그 생명을 번식 시켰다(창5장). 그래서 하나님 나라 대신에 세상을 만들고 하나님 나라를 대항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구속하여 그들에게 참 생명을 번식시켜 그 나라를 이루려고 한 알의 밀알로서 죽으시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셨다.
예수께서는“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3:15). 하셨고, 사도 바울은“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고 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 자신의 운명으로 믿으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것이다. 아담은 자신의 운명을 떠나 하나님 같이 된 것이다. 이것이 죄요 멸망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고 자신의 운명으로 믿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며 영생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의가 된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 죄를 짊어지심 (요1:29)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은 대신 가져가서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제물은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제물로 드려지셨던 것이다.
b. 죄 있는 육신의 모양(놋뱀)으로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심(요3:14.고후5:21)
죄를 담당하면 누구나 죄인의 모양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모독한 신성모독 죄로,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 같이 된 인간의 죄를 담당한 자로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광야에서 장대에 달린 놋 뱀은 독사의 모양이었으나 독이 없었다. 그래서 그 독 없는 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몸에서 독이 제거되어 살아났던 것이다(민21:6~9참).
독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독이 없으신 예수를 바라보면 산다는 것이다. 예수를 본 사람들, 특히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는 하나님을 모독함으로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런 독이 없었다. 오히려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나무였던 것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독 있는 뱀이 되었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사람 관계를 끊는 독이다. 그러므로 이 독을 먹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살기 위해서는 독이 없고 생명이 있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는 생명나무로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인격이다. 하나님은 이 인격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전기는 전선을 통해서 각종 능력으로 기계에게 분배 되고 하나님 생명은 인격을 통해 은혜와 각종 지혜로 사람에게 분배 된다.
표면에 보이는 예수는 죄 있는 육신이었지만 이면에 예수는 하나님이 태초부터 정해주신 죄 없는 온전한 인격이었다. 그러므로 이 인격을 믿고 영접하면 영원한 생명, 즉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다.
c.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평을 이루심(골1:20)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죄가 있어서 화평을 이룰 수가 없었다. 죄는 하나님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고 동산을 떠나 바벨을 건설하여 하나님 나라를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그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지성소의 휘장을 열어 화평을 이루셨다. 끊어진 관계가 연결 되어 죽음이 제거 되었고 생명나무의 길이 다시 열렸다.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 죽은 자는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d.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이 되심(골1:13~15)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선악을 아는 지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 조건을 두고 서로 판단함으로 원수 되어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율법을 두고 서로 원수 되었던 것이다. 율법이 두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켰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남을 판단하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오늘 날의 종교들 역시 그렇다. 하나님에게 받았다 하는 것으로 반대자들을 핍박하고 저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 율법을 친히 담당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심으로 율법주의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 이로써 율법주의는 표면적이며 위선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십자가 안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표면적인 율법은 패하여지고 예수의 십자가 안에서 화평을 이루게 되었다(엡2:15참).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 율법을 고수함으로 이방인들과 원수 져 있고 기독교인들은 교리나 전통을 고수함으로 배타적이고 독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십자가의 은혜를 무시하는 사람들로서 영원히 화평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율법이나 교리나 그 어떤 선한 것이라도 십자가 없이는 화평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온 인류의 화평이시다(엡2:14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