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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6년10월1일
제목: 1.인생의 위치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마27:40-42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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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2016 가을 집회(9.30~10.3)
십자가의 효능(1)
1. 인격을 지키고 보좌우편에 앉으심
아담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타락한 천사로부터 유혹을 받고 하나님 같이 되려고 인격을 버리고, 동산에서 추방되었으나, 예수는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고 십자가에 달렸으나 인격을 지키고 뛰어난 이름 “아들”로서 보좌 우편에 오르셨다.
마귀는 아담이 능력 없음을 알고 “하나님 같이 된다”고 유혹했고 예수에게는 십자가에 달아놓고 뛰어내리지 못한다고 조롱한 것이다. 결국 자기보다 능력이 없다고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에게 “하나님 아들”이라는 지극히 높은 이름을 주시고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이다.
사람을 유혹한 마귀의 목표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사람을 끌어내려 자기 밑에 두고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것이다. 이 계략에서 예수께서는 인격을 지킴으로서 승리하여 하나님 보좌우편에 오르셨다.
마귀는 하나님과 비슷한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사람을 무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우편은 능력으로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인격으로 하나님 생명과 성품을 만유에게 분배하는 곳이다. 천사에게 주어진 능력은 구원 얻은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능력은 보좌 우편에 앉으신 아들로 인하여 생명과 성품이 분배 되도록 돕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은 인격으로 분배 된다.
2. 마귀의 시험
마귀는 언제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유혹하고 시험하며,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보려고 하다가 마귀에게 끌려가 종이 되는 것이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 마귀에게 절하라. 그리고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보라.....이것은 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하시고 인격을 지키심으로 유혹하는 자를 물리치셨다(마4장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당연하기 때문에 이긴 것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은 전부 자신의 위치가 있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정해져있다. 자기 위치에 정해진 일에서는 다 완전한 자들이며 천재들이다.
물고기는 물에서 자유롭고, 날 짐승은 공중에서는 자유롭다. 다 완전하다. 그러나 반대가 되면 죽음이다. 그러므로 삶에서도 완전하고 죽음에서도 완전하다. 하나님은 불완전 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물고기에게 육지에서 살라하지 않았고 새들에게 물 속에서 살라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귀는 물고기에게 너도 날개만 키우면 공중을 날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는 것이다.
만물은 자기분수 이상을 생각 할 수 없기 때문에 시험도 유혹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즉 전능자의 형상을 받았기 때문에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래서 유혹을 받고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 이상의 다른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원숭이처럼 나무타기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원숭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와 꼭 같게 하려고 하면 반드시 유혹을 받고 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도전 하려하면 틀림없이 원숭이의 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있다. 천사와 같은 능력도 없고 동물 같은 강인함도 없다. 유일한 능력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아담은 그것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하나님 같이 되려고 지혜와 능력을 쫓은 것이다.
“뛰어내려 봐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는 말에 속은 것인데 아직도 속은 줄을 모르고 인간을 변화시킬 여러 가지 방법을 내 놓고 있는 것이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고 있고, 유대인은 능력을 찾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혜도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가 지혜를 사용했다면 당초에 십자가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능력이 있었더라면 십자가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사람의 위치를 지키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혜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아 돌아서는 것이다.
왜 그랬는가? 인간이 무시하고 버린 인격을 되찾는 것은 지혜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격은 생명에 의한 것이다. 소의 격은 소의 생명에 달린 문제이지 지혜나 능력의 문제가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생명의 어떠함으로 격은 정해졌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뛰어내렸다면 신임이 증명 되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높임과 숭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뛰어내지 못함으로 인간임이 증명 되었다. 마귀와 세상은 조롱했고, 제자들은 절망했지만 인류의 구속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이다. 할렐루야!
본분을 이탈한 아담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 어떤 모양이 되든지, 사람이라는 위치, 즉 인격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참 사람을 통해 보임으로서 원위치로 되돌리게 해야 한다.
성품의 분배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요 진실의 문제다. 그러므로 이 존귀한 위치는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참 사람 예수께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