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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6년2월29일
제목: 3.구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엡1:1-10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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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2. 구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
사단은 하나님의 동산에 거하는 아담을 유린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서 이탈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람은 정해진 본분을 이탈하여 바벨을 건설하는데 동원 된 것이다.
바벨을 건설하다 보면 서로 싸우게 되고 결과는 허무해진다. 그래서 세상은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인간을 바로잡아보려고 많은 성인들이나 현자들이 나와서 가르치고 다스렸으나 근원을 모르고 현상만을 치료하기 때문에 개선이 되지 않은 것이다.
지은 이는 근원을 아시고 근원을 치료하신다. 창조자의 방법은 근원적이다. 먼저 율법을 주어 스스로는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 다음에는 아들을 보내어 모든 인간을 원위치로 되돌리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구속, 혹은 속량( 돈에 팔려간 사람을 돈을 물어주고 되찾아 오는 옛 관습에서 파생한 말임)이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 같이 된다는데 팔려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값을 대신 물어주고 다시 찾아오도록 하신 것이다.
그 값은 무엇인가? 하나님 같은 사람을 희생양으로 내어놓은 것이다. 즉, 하나님 같은 사람에게서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 예수는 하나님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으로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해도 못 된 모든 인간을 심판했으며, 죽으심으로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하던지 무엇이 되든지, 인간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죽임을 당하셨고 인간으로서 죽으셨다.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 죽는다.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죽여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실 안으로 모든 인간을 하나로 모아 처리하시고 원 위치로 돌리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부터 시작 된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신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헛된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말고 주신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인가? 먹지 말라 하신 것을 먹었기 때문이다. 먹은 것은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아담이 먹고 인간의 살과 피가 되었다는 것이다. 살이 되고 피가 되었기 때문에 가르침이나 깨달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자의 대책은 옛 사람으로는 죽게 하고 새 사람으로 다시 나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창조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예수께서 먼저 완전한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다시 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과 삶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한다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기에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행사를 하게 된다. 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개 안에서 모든 개는 다 짖는다. 소 안에서 모든 소는 풀을 뜯어 먹고 산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아담과 같이 산다. 개개인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생명의 문제로서 생명의 포함이다.
하나님에게서 이탈한 인간은 자기 의지로 이탈한 것이 아니다. 속았기 때문에 자신도 이탈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을 이탈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행동이 사람 스스로에게도 모순과 갈등을 일으키고 불행하게하기 때문에 고치려고 하며, 성현들은 이 행동을 가르침으로 혹은 깨달음으로 바르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던 것이다.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가르침이나 깨달음으로 바꿀 수 없다. 한 생명은 죽고 다른 생명으로 대치해야 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혁명이다. 이와 같이 사람을 바꾸는 것은 혁명인 것이다. 생명의 혁명은 제2의 창조다.
예수는 가르치러 온 분이 아니라 생명을 혁명하려고 오신 분이다. 그래서 그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완전하게 죽으시고 완전하게 다시 살아나셨다.
어떻게 죽으시고 어떻게 살아나셨는가? 육신으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으로는 부활하셨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께 대한 죄와 의에 관계된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죽으심이요 그의 살아나심은 의에 대하여 살아나신 것이다.”
인간의 살고 죽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창조자와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다. 죄는 부당한 관계로서 사망이고 의는 합당한 관계로서 생명이다. 부당한 관계를 청산하고 합당한 관계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사람들은 죽느냐 사느냐, 선이냐 악이냐를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본분을 이탈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만족이 없고 어떻게 해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분을 떠나면 살았다고 해도 죽은 것이다. 살아야 할 근거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본분을 알고 그 본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담은 본분을 이탈함으로 방황하게 되었고 예수는 본분 안에서 진실했다. 그는 죽으심으로 본분에 진실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든지, 어떤 위치에 있든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즉 전능자의 창조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전능자와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라 부르고 뒤를 따랐다. 그러나 한 사람의 완전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보여주셨던 것이다.
여기에 인생의 길이 있고 실제가 있으며 생명이 있다. 예수께서는 “나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실재(진리)이며 삶(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이탈한 모든 사람은 이분 안에서 구속(되돌림)을 받아서 원 위치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시인하고 받아들이면 옛 사람이 청산 되고 그분의 부활을 선물로 받아들이면 새 생명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