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6년2월29일
제목: 주님 나라의 탁월함
설교자: 이재승 장로
본문: 시편84:1~10 -
성경 본문
1.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7.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9.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10.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말씀 요약
2. 주님 나라의 탁월함
시84:1~10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님 한 분만을 자랑하고 주님이 단체화 되어 나라가 되면 우리는 세상을 덮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베드로전서 3:15 )
가. 주님 나라는 상류에 있음
주님 나라는 사탄이 심하게 오염시켜놓은 중류나 하류엔 없고, 오염이 시작되기 이전 상류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체질을 알지 못한 모세는 율법으로, 종교적 의식으로, 전통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선악과로 전 존재가 철저히 오염된 아담을 어찌 교리와 율법을 가르쳐서 고치겠는가? 배우는 사람도 피곤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지쳐 버린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으로 시작되었고(상류), 사탄의 나라는 불만과 욕심으로 시작되었다(하류).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심히 만족하셨지만 하나님 아들들이 곧 사람들이고, 사람들이 곧 하나님 아들들이었다. ‘너희 천사들은 사람들을 섬겨라.’ 하니까 천사가 불만스러워 하며 ‘우리는 못하겠습니다.’라고 하고는 사탄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탄과 그 종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엄청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대구에는 염색공단이 있다. 대구 강물의 하류는 매우 오염되어 강물인지 먹물인지 구별이 안 된다. 정말 무서울 정도다. 하류에서 그런 물을 마시고 병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물고기도 기형 물고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아무리 정수기를 돌려도 원래의 물이 그렇게 나쁜데 어떻게 정수가 온전히 되겠는가. 정수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수기 장사가 장사하기 위해 말하는 속임수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형 인간들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나. 신약의 방법
우리 주님 예수는 우리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상류로 이끄시고 오염 이전으로 이끄심으로써 체질부터, 뿌리부터 바꾸심으로 생명으로, 스스로, 저절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도록 하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1:33~34)
주님 자신을 깊이 알고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면 저절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롬8:4).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면 자연히 닮아가게 되어있다. 부부는 역시 오래 살면 닮아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모두 상류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고 그 물 맛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모든 종교는 결국 율법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명의 노선이 안 보이기 때문이고 보여도 너무 어렵게 보이는 것이다.
다. 왕의 어떠함이 백성에게 골고루 분배됨
세상의 왕들은 군림하고 억지로 누르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왕의 마음과 생각, 체질이 백성에게 골고루 분배 되면 모든 일이 순리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요셉은 애급의 총리였지만 실제적으로 애굽의 왕이었다. 그는 분배함으로 참 왕권을 행사한 것이다. 지혜로운 왕은 백성을 편안케 하고 나라를 태평성대로 인도하기 때문에 참 성군이 되는 것이다. 성군 밑에 사는 우리는 복 있는 백성들이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나라에 사는 것이다.
현대인은 머리도 없고 왕도 없지만 머리 없는 몸이 어찌 살아있는 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 십자가는 우리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함
구속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오히려 예수를 가장 밑바닥에 추락하게 하신 것이다. 절벽에서 밀어 뜨려 버렸다. 사실 우리는 가장 밑바닥, 질이 낮은 흙으로 지은 것이다.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낮은 흙, 가장 겸허한 자리다.
절대로 잘난 체 하거나 교만할 수 없는 낮은 자리,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것이다. 겉은 저주 인데 실상은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자리에서 새롭게 만나서 우리를 완전히 새 창조하기 원하신다. 그리고 형제자매들도 바로 그 자리에서 서로 만나야 참으로 깊이 하나 될 수 있다. 너무 높은 자리에선 서로 만나 지지를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장식해서 서로 만나려고 하니 서로 만나지지 않는다.
사탄은 보석으로, 비단으로, 향품으로 고급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대항했던 것이다.(겔28:1~19,사14:12~19)
흙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질의 흙으로 지어졌는데 흙끼리 ‘너는 검은 흙이다, 나는 하얀흙이다.’비교하는 것은 정말 치사한 일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비교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한 몸의 지체끼리 어찌 서로 비교하고 너는 나쁘다, 너는 좋다. 너는 잘못되었다. 너는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4)
마. 십자가는 예수님만의 경험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분배됨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우리가 주님을 따르다 보면 무의식중에 주님을 닮게 되어 있다. 왜 40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만 들었는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18, 24)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십자가는 유일한 무공해 지역이다. 사탄이 침입할 수 없는 유일한 줄로 재어준 구역이다.(Pollution-free area)
바. 그리스도 안
나는 종교에서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이 너무 어려웠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모두가 하는 말이‘더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세요, 더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께 답을 구하세요. 열심히, 열심히....’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이 과연 무엇인가? 바울을 그의 서신 맨 처음과 맨 끝에 꼭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의미는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 안이 있으면 그리스도 밖도 있다는 말인가?
구약은 율법과 의식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신약은 은혜시대라고 하는데 왜, 모든 종교는 다시 율법과 의식으로 돌아가는가? 말은 그리스도 안이라 하고 신약이라 하면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것이 무슨 이유인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없는데 무슨 아버지 마음이 있겠으며 아버지가 없는 은혜가 어찌 참 은혜라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이렇게 알게 되었다.
줄로 재어준 구역(시16:)만이 생명의 영역인데 생명 자체가 병들었는데 무슨 생명의 영역이 살아 있겠는가?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모유를 먹을 수 있겠는가? 젖동냥도 한 두 번이지.....
씨암탉이 없이 어찌 병아리가 부화되겠으며 엄마가 없이 어찌 고아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수의 디엔에이(DNA)가 없이 어찌 예수를 알 수 있고, 예수를 체험할 수 있고, 예수를 재생산해 내며, 어찌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깨닫게 되었다. 나는 종교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도 예수를 따르는 것도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러다가 이 세계를 만나고 해방 되었다. 신약도, 그리스도 안도, 씨암탉도, 그리스도 디엔에이도, 다 있는 나라,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해진 나라로 우리를 인도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
부활 생명이 모든 죽음을 몰아낸다. 가난함이 부함을 몰아낸다. 미숙함을 몰아내고 성숙함으로 인도한다. 순모임은 모두 섬기는 자다. 섬기는 자가 큰 자다. 세상과 반대다. 사탄도 들어오려면 섬겨야 한다.
사. 물에 녹은 산소
“물고기는 신기하게 물에 녹은 산소만 마시도록 아가미가 달려있다. 만약 물고기가 더 많은 산소를 마시려고 물 밖으로, 모래밭으로 뛰어 나가면 죽게 된다. 물고기는 그냥 대기 중의 산소는 소화해 내지 못하고 오직 물속의 산소만 소화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지어놓으셨다.
우리도 인격 안에 녹아 있는 하나님만 마셔야지 인격 밖의 하나님을 먹고 마시려하면 반드시 올무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죽게 된다. 신비주의 율법주의 그들이 다 그렇다.
교회에 와서 다른 기준을 갖고 또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된다. 영적인 욕심도 마찬가지이고, 도덕적인 기준도, 영적인 잣대도, 다 내려놓아야 한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는 것만 마셔야 되고 인격도 그리스도 안에서, 내 분량만큼만 그 안에서 만족함을 배워야 한다.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 성숙이다.
아. 작은 씨의 하나님, 소자의 하나님
정말 광대무변하고, 무소부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들어온 나에게 이 복음은 천지개벽이었다. 그 복음은 작은 씨의 하나님, 소자의 하나님, 생명의 모태이신 하나님, 우리의 본향이신 하나님이었다. 그 복음을 듣고 나는 눈이 열리고 해방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증거하고 다녔다. 하나님은 크시다. 그렇게 찬양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작고 섬세하고 작은 입자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하나님은 작은 입자의 하나님이어야만 소화되기 쉽고 스며들기 쉽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것이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사람들 속에 하나님에 대한 그림을 갖고 있는데 그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림은 곧 그 사람의 어떠함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들으면 참람한 말인 것 같은데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실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진리도 실제(實際)가 아니면 무슨 살아있는 실재(實在)냐는 것이다.
예수님도 천국을 말씀 하실 때, 모두 아주 가깝고 실제적인 예를 드셨다. 밭에 씨 뿌리는 얘기,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얘기, 등불 얘기, 산위의 동네 얘기, 집나간 탕자 얘기, 잃어버린 동전 얘기, 누룩 얘기, 밭에 묻힌 보물 상자 얘기, 새 푸대, 헌 푸대 얘기, 지혜로운 동관 얘기 등.......
가깝고 실제적이고 소화되기 쉬운 얘기가 아니면 우리에게 어찌 양식이 되겠으며, 같은 말을 수없이 되새김질 하도록 만들어 주지 않으면 어찌 사료와 풀이 단백질로 바뀌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내게는 수고롭지 않다고 한 것이다.“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3:1)
참 명의는 근본을 치료 하는 의사다. 병의 증상만 치료하고 나면 치료한 뒤에 부작용만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명의는 근본 뿌리까지 캐내어 치료하기 때문에 의사 자신은 좀 힘들어도 환자가 너무 너무 감사하게 되고 생명의 은인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명의가 많이 있는 놀라운 세계다!
자. 순모임의 신기함
예수가 보편화된다는 것은 종교에서 참람한 말일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순모임은 이것을 가능케 만들어주었다. 누구나 순섬김이가 될 수 있고, 순섬김이는 단지 연락만 잘하고 돗자리만 잘 펴주면 되는 쉬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종교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모두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해야 되고,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며, 일설에 의하면 바울은 목이 잘렸다고 한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순모임에서는 복음에 접근하기 쉽고, 소화하기 쉽고, 재생산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마치 징기스칸 군대처럼 아무리 졸병이라도 담대하게 “내가 바로 징기스칸이다.”라고 외치므로 징기스칸의 군대는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된 것이 아닌가? 순모임은 정말 우리를 세계 최강의 군대,“예수의 군대”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주님 자신의 탁월하심에 대한 확신, 그리고 주님 나라의 탁월함에 대한 당당함으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큰 뜻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