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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6년3월27일
제목: 생명의 주 그리스도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고전 15:45 행3:15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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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2016 봄 집회(1)
3. 새 생명의 주 그리스도
(고전 15:45 행3:15)
아담 안에서 그와 함께 지음 받았던 인생은 이탈했고,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끝이 났다. 인간의 소원대로 선하든지 악하든지, 신비하든지, 위대하든지 다 심판을 받고 정죄 되었다. 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이탈했으므로 소용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교육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사단이 준 것을 먹었으므로 생명의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가 필요하게 되었다.
사단은 말을 했고 아담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말은 아담의 생명이 된 것이다. 거역하는 자의 말은 거역의 영이므로 받는 자에게서 거역의 생명이 된다.
밥이 탄수화물이기에 몸에 들어가면 당분이 되고 이 당분으로 활동하는 것과 같이 거역의 말씀-영은 받아들인 사람 속에서 거역의 생명이 되고 이 생명으로 거역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미 생명이 된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고칠 수가 없다. 새 창조가 필요하다.
아담은 거역하는 자의 말을 듣고 거역하는 자(생명)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거역이 끝이 나려면 다른 생명, 즉 순종하는 자의 말을 듣고 그 생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다(요6:63). 주님의 말씀하심(레마)은 순종의 영이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말씀하심을 받으면 그 말씀은 영으로 내게 와서 내 생명이 되고 나는 이 생명으로 살게 된다.
그런데 거역하는 생명은 순종의 영을 받지 못한다(요5:30~,8:37 참). 그러므로 새 창조를 위해서는 옛것이 없어져야 한다. 이것을 정죄하기 위해서 먼저 율법과 그 외에 여러 가지를 주셨고(히1:1~3참), 최종적으로는 심판하고 끝내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인간이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되신 이가 오심으로써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이탈했으나 되지 못한 모든 인간을 심판하여 정죄하고 끝내신 것이다. 끝내는 것은 다시 시작하기 위한 것이다.
생명의 대책
하나님의 창조는 부정에서 시작하여 긍정을 향하여 단계별로 이루어졌다. 없는 데서 있는 것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질서에서 만물로, 만물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새 창조는 죽음에서 부활(새 생명)로, 새 생명에서 교회로, 교회에서 나라로…….
창조자의 길, 즉 생명의 대책은 목표를 잃은 옛 사람은 끝나게 하고 새사람으로 다시 나게 하는 것이다(요3:3참). 만물도 다 그렇게 되어 있다. 나뭇잎도 임무를 마치면 아름답게 낙엽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고, 임무를 이탈하면 언제든지 새 잎으로 대치하게 되어 있다.
아담은 임무를 이탈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먼저 완전한(최선의 아담)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 생명을 주어 다시 살게 하셨다.
첫 열매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의 첫 열매(씨)다(롬8:23,고전15:20,23,약1:18참).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법, 즉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을 끝내고 다시 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약경륜의 핵심이며 복음이다. 그러면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과 삶을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옮겨 심는다는 것인가?
예수님은 어떻게 새 생명의 첫 열매가 되셨는가?
어떻게 죽으시고 어떻게 다시 살아나셨는가? 바울은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죽으심이요 그의 살아나심은 의에 대하여 살아나신 것이다(롬6:10).”라고 했다. 육신으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으로는 새 생명으로 부활하셨다(롬1:4,벧전3:18참)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람의 죽음과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생명-관계
인간의 살고 죽는 문제는 동물과는 다르다. 창조자와의 관계요 아버지와의 관계다. 죄는 그분에 대한 부당한 관계로서 사망이고 의는 합당한 관계로서 생명이다(롬6:23). 사망은 끊어지는 것이요 생명은 이어지는 것이다. 창세기 1:26절의 인간이 되려면 지으신 이와 연결 되어야 하고 연결 되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생명은 창조자로부터 왔다. 그리고 또 영원히 그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원천이신 창조자와 연결 되면 생명이고 끊어지면 사망이다. 아담은 본분을 이탈했으므로 생명에서 끊어졌고, 예수는 본분 안에서 진실했으므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8:1,12:2참).
그의 진실하심은 하나님 아들로서 칭호를 받았어도 한 사람으로서 완전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보여 주신 것이다(히8:1,12:2참).
이것이 인생의 길이며, 진리(실제)이고, 생명(삶)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실재)이며, 생명(삶)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이탈한 모든 사람은 이분 안에서 구속(되돌림)을 받아서 원 위치로 회복 되어 생명으로 들어가야 한다(골1:14참).
부활-땅의 회복
예수는 죽으심으로 아담을 끝내시고, 부활하여 새 생명의 첫 열매가 되셨다. 선하든지 악하든지 거역 안에서 시작 된 것은 무엇이나 다 끝내셨다. 이 사람 예수를 보고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본 사람들은 가장 선한 사람이라 했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본 사람들은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선하다 하는 사람도, 완전히 악하다는 사람도 다 예수 안에 포함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여 버리고 새 생명을 가져오신 것이다.
새로운 씨(생명)를 뿌리려면 먼저 밭을 환원시켜야 한다. 농부는 해마다 새 밭을 만들어서 씨를 뿌린다. 저주 받은 옛 땅은 회복 되어야 한다(창1:12,3:17,8참)
새 생명
어떻게 새 생명을 주시는가?
요한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제자들에게 아직 그 영이 없었고(요7:38,9참), 주님은 보혜사로서 그 영을 약속하셨으며 (요14:16참),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을 것이라(요14:20참).”고 하셨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에는 요한은 숨을 크게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요20:22참) 하셨다고 했고, 누가는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이 성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행1:4,5참) 하셨다고 했으며, 오순절(행2:1,2참) 이후 바울은 예수는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고 했다(고전15:45참).
예수님은 지금 육신으로 땅 위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보혜사로서, 한 생명으로서, 생명주는 영으로서, 믿는 자들의 새로운 생명이 되시며 교회와 함께 사신다. 그 영은 주 예수의 영으로서 죽음과 삶에서 우리와 함께하신 영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졌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 믿는다.” 하였다(롬6:8) 주님이 그렇게 되었으면 우리는 그 안에서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우리와 하나였다면 다시 삶에서도 하나다. 죽음에서 우리를 포함하셨다면 부활에서도 우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육으로는 모양이 다르지만 죽음에서 하나이고, 부활에서 그 모양이 다르지만 영으로는 하나다(고전15:35~44참).
예수는 새 생명의 주가 되신다. 주는 창시자다. 옛 생명이 아담으로부터 시작 되었듯이 새 생명은 예수로부터 시작 되었다. 이 예수는 생명주는 영으로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며 또 새 생명이 되신다.
새 생명 안에서 삶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나시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 불의 혀 같이 갈라짐과, 바람이 부는 것 같음으로 역사하셨다고 했다. 그때 모인 무리들이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 각각 자기 방언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것은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서 교회의 발생이었다.
본분과 위치를 이탈한 아담의 후예들은 시날 평지에 모여 흩어짐을 면하려고 성 쌓기를 모의하고 바벨탑을 쌓았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셨음으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바벨에서는 흩어져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고 오순절에는 서로 말을 알아들었음으로 모여 교회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옛 시대와 새 시대를 구별하는 것이며, 옛 생명(생활)과 새 생명(생활)을 구별하는 것이다.
시대는 생명으로 시작 되고 말을 하고 교통함으로 사는 것이다. 아담의 시대는 아담의 생명으로 시작하여 아담의 말로 살았듯이, 예수의 시대는 예수의 생명으로 시작 되고 예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생명주는 영”이라고 했다(고전15:45). 그 영은 생명을 주는 영이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의 영은 자기와 함께 죽은 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영이다. 그러므로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받아들이면 새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신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옛 생명은 끝이 나고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새 생명은 죽음을 거쳐 다시 난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