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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생명의 자유
본문: 갈1:1-5
설교자: 김치현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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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1. 생명의 자유
(갈1:1-5).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공간을 초월해 경험할 수 있게 길을 연 사람이다. 유대교의 편협함과 제자들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 예수를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주관적으로 체험하여 모든 사람을 예수 안에서 발견되게 하고 예수 안에 포함되게 하였다.
율법에서 생명으로
복음은 율법의 노력에서 은혜와 생명으로 돌아서게 한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려놓아지는 경험이다. 복음은 내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다는 것을 믿는 일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잘 들어야 그것이 내게 복음이 되고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했다는 얘기만 하게 되고 무엇을 해야 된다는 얘기만 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가 복음이다. 복음은 나를 고치고 개선하고 나를 세우려는 모든 수고에서 해방되게 한다.
율법주의를 경계함
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못 받는가? 계명을 다 지켜도 계명을 주신 이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이도 행위는 할 수 있다. 생명이 없이도 그 생명의 행위를 흉내 낼 수 있다. 율법을 행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식하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속는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표면만 지키고 이면을 안 지키게 되었는가? 마음대로 하는 것보다 규정대로 하는 것이 훨씬 쉽다. 규정대로 하다 보면 습관처럼 되어 버린다. 습관은 별 마음 없이도 하는 것이니 쉽다. 율법도 참으로 지켰다면 마음이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했다. 그러나 율법 때문에 생명과 행위가 다른 외식이라는 문제가 생겨 버렸다.
인공물을 경계함
바벨탑은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가? 바벨은 땅에서 쌓아 올라간 인위적인 사회이다. “돌 대신 벽돌을 쓰고, 흙 대신 역청을 쓰자.”는 말은 사람의 노력으로 하늘에 이르려는 인공적인 노력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지식으로 생명을 대체하고, 자기 의로 은혜를, 소유로 존재를, 인위적인 조직으로 창조의 질서를 대체하는 그런 일들이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갈수록 더 모조품이 나오고 인위적일수록 더 나쁜 종교가 된다. 공산주의의 실패는 가장 인위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계획이 가장 많이 들어간 정치제도이다. 인간의 삶을 그 계획한 대로 모두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 심한 것이 종교이다.
굳어짐을 경계함
하나님의 일에는 고정관념을 가지면 안 된다. 사람이 정해 놓은 것에 매이면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을 늘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까지 옳았다가 오늘 아닐 수도 있고 어제는 그 방법으로 되었지만 지금은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언제든지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가듯 사는 것이다.
교리주의자들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움직임과 존재까지도 고정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교리는 옳지만 고정되면 생명이 사라져 버린다. 틀린 것이 아니지만 매이면 안 된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듯이, 교리는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기독교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 교리를 주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에게 칼을 맡긴 것과 같다.
하나님 앞에서 내 고정관념이 처리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자기 관념 속에 가두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하면 고집스럽고 편협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정신이 바뀌려면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가듯 그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하나님의 훈련 안에 들어온 사람은 복이 있다. 괴로운 것 같아도 뒤로 가 보면 무한하신 은혜이다.
절대화의 함정을 경계함
종교에는 ‘절대화’의 함정이 있다. 사람이 볼 때 상식 밖의 일을 하면서도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자기와 신념이 다른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무서운 함정이고 말로이다. 자기가 믿는 것이 절대적이라 해야 자기가 합리화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시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절대적인 것이 없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시지만 하나님 경륜은 언제라도 바뀔 수가 있다. 이 길이 막히면 저 길이 열리고 사방이 막히면 하늘 길이 열린다. 물이 흐르다가 부딪히면 돌아가 굽이쳐 흐르고 막히면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는 것과 같다. 변치 않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이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경험하고 아는 것은 우리 된 만큼 아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알 수도 없다. 사람이 달라지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